[여의춘추-김영석] 과학을 말하지 않는 사회 기사의 사진
지난 4월 21일이다. 과학의 날이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페이스북에 “우리는 과학자를 제대로 대우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더 이상 과학자를 꿈꾸지 않는다고 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불 꺼지지 않는 실험실’ 신화를 비판하며, 휴식 있는 사람 중심의 생태계 조성을 약속했다. 순수 기초연구비를 2020년까지 2배로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장밋빛 청사진에 많은 과학기술인들이 지지 선언으로 화답했다.

여기까지였다. 지난 5월 문 대통령의 취임 연설문에 과학이라는 단어는 없었다. 지난 9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업무보고 땐 통신 요금에 밀렸다. 지난 10월 4차산업혁명위원회 회의 때도 과학은 없었고, 정보통신기술(ICT)만 존재했다. 대통령만이 아니다. 새로 신설된 대통령 과학기술보좌관은 탈원전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국감에선 ICT가 곧 과학인 양 떠드는 목소리만 들렸다. 올해도 어김없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순수 기초연구비 예산은 삭감 대상에 올라 있다. 헌법마저 제9장 127조를 통해 과학기술을 경제 발전의 도구로 규정하고 있으니, 과학을 말하지 않는 정치권의 행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이렇다 보니 현장은 뒤틀려 있다. 국가 지원 연구개발에는 실패가 없다. 기초과학연구소나 대학들의 과제 성공률은 100%에 가깝다. 당장 예산을 따야 하니 결과를 내기 쉬운 단기 과제에만 매달린 결과다. 선진국의 성공률이 20% 안팎인 점과 비교된다. 정부는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없다. 연구소나 대학에 몸담고 있는 이들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국내 박사 학위취득자 중 자연계열 취업 비율이 가장 낮았다. 한 해 1500여명의 이공계 학생들이 로스쿨과 의학전문대학원 등 다른 분야로 빠져나가고 있다. 병역특례마저 사라질 위기다 보니 가속도가 붙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7년 뒤인 2024년 공학 계열 필요인력이 20여만명이나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공계 절벽 시대’의 도래가 멀지 않았다.

과학기술계의 사기는 바닥이다. 탈원전 등 확실한 근거 없이 기죽이는 일이 계속되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과학의 잣대로 과학기술을 바라봐야 온당하다. 경제적 가치만 따진다면 과학기술의 진보는 요원하다. 또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과학기술은 실패를 먹고 발전한다. 어제 실패한 실험 결과를 가지고 오늘의 실험이 이뤄지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실험을 예측할 수 있다. 과학은 불확실성과의 기나긴 싸움인 것이다. 그러기에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문 대통령이 비판한 것과 달리 ‘연구실의 불’이 계속 켜져 있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의 연구 대부분은 연구비 제약 탓에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 현재의 것을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편리하게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원천 기술 확보를 위한 과감한 투자가 요구된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정부 지원 연구비 중 일정 부분을 이른바 ‘실패 펀드’ 형태로 조성해 젊은 과학자들에게 묻지마 투자를 해보자. 제약 없이 상상을 즐길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다. 또 정부는 5년마다 일방적으로 성장 동력을 제시하고, 이에 맞는 연구를 요구하는 과거 방식을 지양하고, 과학기술계의 흐름에 따라 지원하는 조력자로 남을 때가 됐다.

가장 중요한 것은 관심이다. 과학의 대중화가 절실하다. 대통령이 앞장서 과학을 말해야 한다. 현장을 찾아야 한다. 앞서 과학을 읽어야 한다. 문 대통령은 과기부 업무보고 때 과학기술 50년사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1967년 출범한 첫 과학기술 행정조직인 과학기술처 설립 50주년을 맞아 발간된 책이다. 총 3권으로 1000여쪽의 전통 과학기술 역사서다. 바쁜 국정으로 아직 책장에 꽂혀 있을 듯하다. 연말 휴가 때 한번쯤 시간을 내 읽어보길 권한다. 역사서는 과거의 기록이지만 미래를 설계하는 가장 좋은 교과서다.

김영석 논설위원 y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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