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지형은] 기다림은 희망이다 기사의 사진
올해 우리나라와 동아시아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격하게 변동이 많았다. 전통있는 외국 언론들이 오늘날 세계의 민주주의를 구했다고 평가하는 광화문 촛불 혁명을 통해 비폭력으로 정권이 바뀌었다. 엊그제의 도발까지 이어진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동아시아를 뒤흔들고 있다. 북한은 세계의 문제아로 낙인찍혔다. 시리아를 비롯한 분쟁 지역의 난민 문제로 촉발된 우경화와 자국 중심주의는 서구 세계의 정치 지형도를 크게 바꾸었다.

‘시월 이십사일 명성사태’는 그렇지 않아도 말뿐 아니냐는 자괴감에 시달리며 힘겹게 마무리하던 한국 교회 종교개혁 500주년을 결정적으로 바닥에 패대기쳤다. 명성사태는 명성교회만의 문제이거나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동남노회 또는 교단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갖고 사는 사람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 전체의 문제다. 교계 사안으로는 이례적으로 일반 언론들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명성사태를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구조와 연관된 적폐의 단면으로 보는 것이다.

격한 분노와 깊은 슬픔이 뒤섞인 명성사태를 적어도 신앙양심에 따라 해결하지 않으면 한국 교회 전체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다. 지울 수 없는 비신앙적 비윤리적 낙인이 찍힌 채 말과 삶이 다른 종교 권력 단체로 무기력하게 생존할 것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것들은 올해의 큰 사건 중에서 얼개 정도일 뿐이다.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오늘날의 세계 구조에서 이미 한가운데가 됐다. 올해 우리가 겪은 교회와 사회의 격한 변동은 세계적인 흐름과 뗄 수 없이 연관돼 있고 모두가 현재 진행형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포항 지진으로 발생한 땅의 흔들림이 심상치 않고 그로 인한 불안이 깊다. 사회 현상 전체의 흐름에서 우리는 지금 흔들리는 터전 위에 서 있다. 현재의 상황은 우리가 걸어온 과거의 결과다. 잘못이 있다면 우리의 잘못이다. 남 탓할 것 없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후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하는 문제다. 미래 말이다.

미래에 대한 질문은 곧 기다림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릴 수 있는가 하는 명제다. 우리 사회와 교회가 걸어갈 미래에 기다릴 뭐 좋은 것이 있는가. 기다릴 것이 없으면 미래는 어둡다.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의 눈동자와 연관하여 가장 슬픈 일은 기다릴 그 무엇이 없다는 체념이 보이는 경우다. 아이들의 눈망울이 아름다운 것은 그 안에서 반짝이는 호기심 때문이다. 삶에 대한 관심과 희망이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산다.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 기다림이다. 기다림은 희망의 본질이며 심장이다. 기다림이 강렬하게 활동하면서 희망이 비로소 희망이 된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다. 이 명제를 이렇게 바꾸어도 좋으리라. ‘나는 희망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명제가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것이라면 희망을 넣어 바꾼 명제는 존재의 질에 대한 것이다.

대림절, 곧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절기다. 돌아오는 주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 첫 주일이다. 교회는 기다림의 공동체다. 사람 사는 사회가 제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지금보다 더 좋은 미래를 희망할 수 있다는 기다림을 가져야 한다. 이런 기다림이 생존의 조건이다. 교회가 세상에 전해 온 복음을 일반적인 말로 풀면 ‘근원적인 기다림’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더 나은 미래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밥 먹지 않고 어떻게 살겠는가. 밥이 하늘이라고 말한 시인 김지하의 성찰은 일상과 성스러움의 영역을 하나로 묶었다. 밥이 하늘인 까닭은 밥을 먹으면서 희망을 먹기 때문이다. 하늘 아버지께서 내려주시는 가장 큰 선물이 기다림이란 희망이다. 십이월 첫날이다. 대림절로 걸어든다. 다시 희망하자.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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