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노트] 경조증 기사의 사진
데이비드 봄버그 ‘붉은 모자’
일반인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정신과에서 경조증은 흔히 쓰이는 용어다. ‘조증(mania)보다 증세가 약한 것을 경조증(hypomania)’이라고 설명하면 쉽겠지만, 임상 현장에서 이를 진단하는 건 까다로운 일이다. 무엇보다 경조증과 정상을 구별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쉬지 않고 일해도 지치지 않는 것이 ‘남다른 에너지를 지닌 정력적인 사람’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경조증 때문에 ‘방방 들떠 있는 것’인지 감별하는 게 쉽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정신과 전문의가 정상과 비정상도 제대로 구별 못 하느냐고 하겠지만 그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니 어쩔 수 없다. 우울증이나 조울증 같은 기분장애를 전공한 정신과 의사는 경조증 진단 기준을 폭넓게 적용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성격 구조를 중심에 두고 판단하는 의사는 기분이 과도하게 들떠 있고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것을 ‘자기애’로 해석할 수 있다. 경조증이 지나가면 우울증이 따라오기 마련인데 이때 병원을 찾아가면 우울장애로 잘못 진단 내려지기도 한다.

경조증은 팔색조처럼 양태가 휙휙 바뀌어서 정확한 진단을 포착해내기 어렵고, 그만큼 오진 가능성도 크다. 또 환자가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태반이다. “의욕이 넘쳐서 일도 잘되고 기분도 좋은데, 이게 경조증 때문이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라고 한다. 조곤조곤 설명해줘도 인정하지 않는다. 진단보다 진단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게 더 어렵다. 경조증(더 정확하게는 Ⅱ형 양극성장애)이라는 용어보다 환자가 수용할 만한 다른 표현들을 활용해서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나도 기분장애를 전공하고 오랫동안 연구해 왔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교과서와 논문에 실린 지식들을 계속 쌓아 왔지만 “그것을 임상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숙제다. “기분의 오르내림이 어느 정도로 심해야 병리적이라고 판단할 것이냐”에 그 누구도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단언할 수 없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게 사람의 마음이고, 종잡을 수 없는 게 인간의 감정이다. 마음의 문제에 관해 말할 때는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만 하는 이유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이 답이고.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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