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타임 푸어 기사의 사진
미국 국방부는 장시간 근무를 당연히 여기던 곳이다. 2009년 로버트 게이츠 장관이 미셸 플루노이에게 국방정책 차관을 맡아 달라고 하자 그는 조건을 내걸었다. 학교에 다니는 세 아이의 엄마이니 근무시간에는 열심히 일하겠지만 저녁시간에는 가급적 집에 있겠다고 했다. 게이츠 장관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가 집에서 일할 수 있게 보안 시스템도 설치해줬다. 일과 가정을 병행한 플루노이는 부하 직원들에게도 이러한 조직문화를 확산시켰다. 관리자들에게 밤늦게 이메일을 보내지 않도록 했고 대안 근무시간표 제도를 만들었다. 장교들은 평일 오후에 아들을 데리고 썰매장에 가거나 자녀 학교 자원봉사에 참여했다.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자인 브리짓 슐트가 ‘타임푸어(시간거지)’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덴마크는 80% 넘는 엄마들이 일하면서도 엄마와 아빠의 여가는 비슷하다. 하루 6시간12분의 여가가 있고 이 중 1시간30분은 아이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롭다. 일하기 위해 살지 않고, 길게 일하기보다 집중해서 일한다. 구글이나 스리엠 같은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근무시간의 20%는 빈둥거리면서 놀거나 흥미를 느끼는 프로젝트에 투입하라고 권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장 근로의 불명예를 안고 있다. 연간 노동시간은 OECD 국가 평균보다 300시간이나 많다. 워커홀릭(일중독자)을 자랑처럼 여기고,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낀다. ‘과로 사회’다. 얼마 전 한 취업 사이트가 2030세대 직장인 1162명을 조사했더니 10명 중 7명은 타임푸어라고 여기는 것으로 나왔다. IT 업체나 유통업체 등을 중심으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work & life balance) 문화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은 먼 얘기인가보다.

엊그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에서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행정해석 폐기를 해서라도 근로시간을 줄이겠다고 했다. 삶의 질 향상과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우리도 타임리치(시간부자)로 바뀔 때가 됐다.

이명희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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