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으로 배우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2>] 십계명, 암송에 그치지 말고 삶에 적용 계속…

[인문학으로 배우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2>] 십계명, 암송에 그치지 말고 삶에 적용 계속… 기사의 사진
1879년 ‘진보와 빈곤’ 출간으로 유명해진 헨리 조지는 1886년 연합노동당 후보로 뉴욕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하지만 선거 당시 가톨릭교회들이 조지를 공격해 노동자들을 혼란에 빠뜨렸고, 결국 조지는 2등으로 낙선했다. 당시 상황을 풍자한 1886년 ‘Judge’의 만평. explorepahistory.com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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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문: 하나님이 제8계명에서 금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은 단지 도둑질과 강도질만 금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속여서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모든 사악한 음모, 속임수, 거짓 저울이나 측정기, 위조지폐 제조, 고리대금도 금하십니다. 우리는 이웃을 어떤 방식으로든 기만해서는 안 됩니다. 강제하는 것뿐 아니라 합법적으로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제114문: 하나님께 회심한 사람들은 이 계명들을 완벽히 지킬 수 있습니까?
: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경건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주 조그마한 순종을 시작할 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순전한 마음으로 몇몇 계명뿐만 아니라 모든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제115문: 이 세상에서 아무도 십계명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면 하나님은 십계명을 왜 그렇게 엄하게 명하셨습니까?
: 첫째, 우리 인생을 통해 우리가 죄에 물든 사람임을 점점 더 깨달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죄 용서와 의로움을 더 간절하게 찾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이 세상이 지나고 완전함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점점 더 새로워지고자 하는 분투를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죄형법정주의’라는 말이 있다.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되려면 그 행위를 처벌하는 법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십계명은 마치 고조선의 8조법처럼 오래전 만들어진 것으로,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을 모두 반영하진 못한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살인, 절도, 간음 등의 범죄는 거리가 멀다. 저작권과 지적재산권 침해, ‘갑질’ 행위, 명예훼손, 무고죄(誣告罪) 같은 것들이 우리 일상에서 좀 더 자주 있음직한 문제들이다. 이런 것들을 과연 십계명으로 처벌할 수 있을까. 이런 연유로 우리는 십계명을 교회에서 암송하는 데만 그치곤 한다.

지난 회에 언급했듯 십계명은 한 사람의 행위를 처벌하거나 제약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십계명의 ‘정신’을 통해 참된 안식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우리는 십계명을 암송하고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을 삶의 현장으로 적용해나가야 한다. 십계명에서 말하는 8∼10계명의 본질은 무엇일까.

십계명의 정신과 현대 사회

십계명의 제8계명은 도둑질을 금한다. 제9계명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 하고, 제10계명은 탐내지 말라는 요구이다. 십계명의 정신을 고려한다면 8계명은 단순히 개개인에게 훔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규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부의 재분배, 고리대금, 양극화 현상 등 누군가의 재산을 침해하는 다양한 현상을 확대해서 적용하라는 요구가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110문이 말하는 핵심이다.

사회로 눈을 돌려보면 ‘자본주의’라는 이름으로 이윤을 독점하는 기업의 횡포, 국민을 IMF 외환위기 사태로 몰아넣었던 정치인의 기만, 신의 이름을 빙자해서 사욕을 채우는 종교인의 설교가 제8계명의 표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국가의 공식발표나 권력의 주변에서 진실을 외면하는 언론 보도는 9계명을 위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 기업, 종교, 언론은 이미 열 번째 계명의 탐심으로 가득차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조직에 속한 크리스천들이 십계명을 주문처럼 암송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십계명의 정신을 사회에서 적용했더라면, 십계명이 진정한 ‘안식’으로 승화됐을 텐데. 오히려 많은 크리스천이 갑질 논란 등의 중심에 서 있다. 그 결과 안식의 빛을 비춰야 할 교회는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을 땅에 떨어지게 만들었다. 3000년 전에 쓰인 십계명을 현대 사회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톨스토이와 헨리 조지의 가르침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Lev Nikolayevich Tolstoy·1828∼1910) 작품의 상당수는 성경을 바탕으로 한다. 교회와 크리스천이 그의 작품에서 주요 소재가 되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 ‘바보 이반’ 등의 작품을 가만히 보면 8∼10계명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는 톨스토이의 설교 같다.

탐욕을 버리고, 솟구치는 욕심을 절제하며, 사랑으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톨스토이 작품에 나타난 어두운 사회의 단면은 교회가 없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가 아니라 오히려 넘쳐나는 교회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줬던 미국의 크리스천 헨리 조지(Henry George·1839∼1897)가 있다. 헨리 조지는 이 세상에서 재분배의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고,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을 ‘사유화’하는 탐욕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즉, 토지의 사유화가 빈곤과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토지를 소유해서 부를 축적해 나가던 기업가, 귀족, 로마 가톨릭은 헨리 조지의 주장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나 헨리 조지는 ‘교황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교회의 모든 배려가 지상의 현실적 삶에 속하는 것을 무시하면서까지 오로지 영혼의 구원에만 전적으로 쏠려 있다는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양식이 부족한 것은 하나님이 임무를 다하지 않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노동 의욕을 가진 인간이 가난이라는 저주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이 마련하신 물자의 원천에 잘못이 있어서도 아니고, 약속하신 양식이 지상에 풍부하게 존재하지 않기 때문도 아닙니다. 인간이 불경스럽게도 창조주의 자비로운 의도를 거스르면서 토지를 사유 재산으로 만들고 관대한 하나님이 모든 인간을 위해 마련하신 토지에 배타적 소유권을 설정한 후, 이를 극소수에게 부여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만인이 형제라고 가르칩니다. 인간의 진정한 이해 관계는 조화의 관계이지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인생의 황금률처럼 내가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고 가르칩니다. 노동의 생산물과 생산 과정에 과세하는 제도로부터, 그리고 누군가는 팔고, 누군가는 사야 할 물건의 가격을 올리는 결과로부터 보호무역이라는 이론이 나왔습니다. 이 제도는 복음을 부인하고 예수께서 정치경제학을 모르실 거라고 전제하면서 ‘국가 번영의 법은 하나님의 법과 같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이 이론은 국가 간 불화를 정당화하며, 적대적 관세 전쟁을 확대하라고 부추깁니다. 번영을 위해서는 다른 나라 국민의 생산에 제약을 가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도, 다른 나라 국민이 자기 나라 국민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헨리 조지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는 십계명 정신을 구체적으로 적용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주요20개국(G20)을 들먹거리는 동안 사회 곳곳의 젊은이들은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는 한국 교회가 사회 속에서 8∼10계명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이델베르크 114∼115문의 내용처럼 우리가 십계명을 제대로 지킬 수 없지만 그것을 지켜 나가려 노력할 때, 안식이 생겨나기 시작할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교세와 선교지에 해당하는 ‘통계’의 싸움이 아니다. 삶 속에서 십계명을 적용하려는 싸움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십계명 사용설명서다.

▶ 나눔과 적용을 위해 생각해 볼 것은?
☞ 국가나 사회에서 8∼10계명을 어기는 사례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 헨리 조지가 제시한 내용 중 한국사회가 귀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글=박양규 목사
△서울 삼일교회 교육디렉터 △청소년을 위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2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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