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뷰-라은성] 산타클로스 제대로 읽기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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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벨리알은 무슨 상관이 있을까?(고후 6:15) 또 그리스도와 산타클로스는? 어느샌가 그리스도께서 오신 날이 산타클로스가 오는 날로 바뀌었다.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만나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 되었다. 산타클로스의 정체는 무엇이고, 성탄절 그리스도의 자리가 어떻게 산타클로스의 자리로 바뀌게 되었는지도 살펴보려 한다. 산타클로스는 성자 니콜라스에게서 나왔다. 여러 시대와 미신들로 인해 니콜라스는 진터클라스라 불리게 되었고, 영어권 사람들로부터 산타클로스로 불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니콜라스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니콜라스(270년 3월 15일∼343년 12월 6일)는 부유하고 경건한 가정의 독자로 좋은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삼촌의 보호 아래에서 자랐다. 312∼315년 니콜라스는 그와 함께 팔레스타인을 방문했다 혼자 남아 수도원 생활을 했다. 그 후 317년 소아시아로 돌아왔고 고향 미라에서 감독이 됐다. 감독 니콜라스는 가난한 자들을 늘 돕고 보살피면서 온정을 베푸는 자였다. 그런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놀라운 니콜라스’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였다. 그 이유는 항해자, 상인, 회개하는 도둑, 어린이, 전당포 및 학생의 후원자라 여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밀로 선물을 안겨다 주는 이야기와 관련해 산타클로스, 즉 진터클라스라 불리게 됐다. 자신의 번영과 형통을 위해 누군가에게 기원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니콜라스를 떠올렸다.

대표적인 소문은 양말을 걸어놓고 선물 받는 것에 대한 것이다. 세 딸을 둔 한 가난한 아버지는 딸들을 시집보낼 결혼 지참금이 충분치 않아 걱정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니콜라스는 어느 날 밤 금이 든 주머니를 굴뚝으로 몰래 떨어뜨렸다. 근데 떨어지는 그 주머니가 화로에 걸려 있던 양말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젖은 양말을 말리기 위해 화로에 걸어두었던 것이다. 또 둘째 딸을 위해서도 니콜라스는 동일하게 금 주머니를 떨어뜨렸다. 아버지는 누가 이런 귀한 선물을 떨어뜨렸는지 알기 위해 밤마다 기다리고 있다가 마침내 그 사람이 니콜라스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게 들킨 니콜라스는 자신이 행한 것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관심받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소식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누군가 모르는 자로부터 선물을 받게 될 때 이 선물의 출처가 니콜라스일 것으로 추측했다.

니콜라스는 로마제국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의해 미라 지역에서 추방당했다가 검거돼 감옥에 갇히고,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는 죄목으로 숱한 고문을 받았다. 그는 쇠사슬에 묶인 가운데서도 함께 갇힌 자들을 위로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1세의 ‘밀라노 칙령’으로 니콜라스는 석방돼 미라로 돌아왔다. 그는 정통 신앙을 고수하면서 이단 아리오스파에 당당히 맞서기 위해 325년 1차 니케아 범종교회의 때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마도 345년이나 352년 12월 6일에 소천했을 것이라고 여겨진다. 교회는 매년 그를 기념하는 날을 12월 6일로 지키고 있다.

니콜라스가 산타클로스로 둔갑된 것은 성탄절, 즉 12월 25일에 어린이들은 부모로부터 선물을 받곤 했는데 일반인들은 그리스도라는 이름보다 니콜라스가 더 익숙했다. 성탄절에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전달해야 했던 어느 영국인들에 의해 니콜라스의 날(12월 6일)이 12월 25일로 슬그머니 옮겨졌다. 성자(saints)를 기념하는 것이 금지된 것을 안 그들은 12월 25일을 ‘아빠성탄절’ 또는 ‘옛사람성탄절’로 바꾸어 사용했다. 여기에다 중세시대에 돌던 각종 이야기들을 종합해 가공했다.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이르러 ‘아빠성탄절’이 ‘기분 좋은 날’로 바뀌게 되었다. 이것을 부추겼던 것은 1843년 찰스 디킨스가 쓴 ‘성탄절 노래’에 나오는 삽화를 그린 존 리치의 ‘성탄절 선물정신’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구두쇠 스크루지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다. 산타클로스는 성자숭배에서 비롯된 로마 가톨릭 미신이었고, 이를 악용하여 장사치들은 어린이들의 심리를 이용하게 됐다. 정말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혹은 새해를 맞아 선물을 주는 기독교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비성경적이고, 비역사적인 사실을 통해 그리스도가 오신 날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칼럼은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와 함께합니다.

라은성 총신대 역사신학 교수,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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