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포퓰리즘 바람] 경제위기에 ‘난민’ 설상가상… 美·유럽 포퓰리즘 부추겨 기사의 사진
이미지를 크게 보려면 국민일보 홈페이지에서 여기를 클릭하세요

극심한 실업률·빈부 격차에
2008년 금융위기 겹치면서
신자유주의 본격적으로 몰락

유럽 정당들 이슬람계 이민자
난민에 대한 대중 반감 이용

포용·관용·자유·평등 같은
존중돼야 할 가치 크게 훼손
민주주의 후퇴할까 큰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 마리 르펜의 대선 결선투표 진출,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연방의회 입성…. 근래 미국과 유럽에서 포퓰리즘이 득세한 대표적 사례다. 두 대륙에서 포퓰리즘은 말 그대로 ‘대세’를 이뤘고, 선거 때마다 화제가 됐다.

포퓰리즘 열풍이 이토록 거셌던 이유는 뭘까. 특히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안정적으로 작동한다고 평가받아온 미국과 유럽이 그 열풍의 중심이 된 까닭은 뭘까.

흔히 ‘대중의 구미에 호소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포퓰리즘은 대중이나 인민, 민중을 뜻하는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했다. 19세기 말 미국의 인민당 등장을 그 시작으로 꼽는다. 소외된 농민과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한 인민당은 개혁을 거부하는 엘리트들을 주적으로 삼았다. “정치적으로 타락한 엘리트 계급 대신 우리가 통치하는 미국”을 주창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슬로건과 거의 똑같다.

20세기 전반 나치를 비롯한 파시즘도 권력 유지를 위해 포퓰리즘을 활용했다. 국가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파시즘은 노동자의 권익을 중시하는 포퓰리즘과는 사상적 기반이 다르다. 하지만 지지 기반을 대중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이 때문에 파시즘 지도자들은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정권을 잡은 뒤 독재를 했다. 이 과정에서 대중을 상대로 위기감과 증오를 부추기는 한편 외부 집단을 희생자로 삼았다.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즘은 최근 유럽과 미국의 이민자 혐오증과 일맥상통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멕시코 이민자들을 성폭행범이나 범죄자로 규정하고 반무슬림 행정명령을 남발하고 있다.

포퓰리즘이 21세기 들어서도 확산된 배경은 뭘까. 많은 전문가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본격화된 신자유주의 몰락을 꼽고 있다. 지난해 블룸버그 통신이 최고의 책으로 꼽은 ‘포퓰리즘의 세계화’에서 저자 존 주디스는 “포퓰리즘은 지배적인 정치이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등장한다”고 지적했다.

1970년대 세계 경제는 오일쇼크 이후 만성적 인플레이션에 대한 처방으로 신자유주의를 떠받들었다. 작은 정부와 시장의 역할 강화, 관세 없는 자유무역이 글로벌 경제 질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곳곳에서 극심한 실업률과 빈부격차를 낳았다. 그리고 미국발 금융위기(2008∼2009년)와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재정위기(2009∼2012년), 신흥국 경기침체(2014∼2015년) 순으로 지구촌을 혼돈으로 몰아넣었다. 신자유주의 선전대 역할을 했던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지난해 신자유주의 정책이 불평등을 키웠다는 반성문을 썼다.

신자유주의는 우파가 만들었지만 좌파 진영에서도 받아들여졌다. 영국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와 미국 민주당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신자유주의는 ‘진보적 신자유주의’로 불린다.

책 ‘거대한 후퇴’에서 미국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좌파·진보가 제 구실을 못 하자 진보적 신자유주의가 득세했다”면서 “트럼프를 뽑은 사람들이 거부한 것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진보적 신자유주의였다”고 지적했다. 미국 정치평론가 나오미 클라인 역시 “트럼프 승리의 핵심 요인은 신자유주의,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엘리트 신자유주의의 해악에 있다”고 했다.

유럽의 경우 이민 문제가 포퓰리즘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프랑스 국민전선, 덴마크 국민당, 오스트리아 자유당, 스위스 국민당 등은 이슬람계 이민자와 난민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정당의 정체성과 연결시켜 지지율을 끌어올렸다. 극단주의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발호한 것도 포퓰리즘 정당들의 세 확산을 도왔다.

유럽에서는 또 신자유주의 원칙을 제도화한 EU 체제 때문에 포퓰리즘이 거세진 측면도 있다. EU 협정 때문에 회원국들이 개별적인 정책을 펼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재정지출, 세금 인상, 자원 재분배 등 회원국 혼자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동안 우위를 차지했던 중도 성향 정당들이 힘을 못 쓰게 되자 자연스럽게 국경 부활과 EU 탈퇴를 주창하는 포퓰리스트들이 등장했다. 특히 민주주의 전통이 약하고 경제가 나쁜 동유럽과 남유럽 지역에서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포퓰리즘이 더 확산되면 영국 외 다른 국가들도 EU를 탈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 영국 옥스퍼드대 얀 질론카 교수는 “EU는 이제 해체될 운명”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최근 포퓰리즘의 득세와 관련해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민주주의의 퇴보다. 포퓰리즘 정당과 정치인들이 민주적 선거로 권력을 잡았지만 포용과 관용, 자유, 평등과 같은 민주주의 가치들을 훼손시키고 있어서다. 이에 대해 미국 예일대 티마시 스나이더 교수는 책 ‘폭정’에서 시민의 역할을 강조했다. 스나이더 교수는 “민주주의 원칙들은 영원한 것이 아니며, 제도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다. 결국 시민들과 언론, 법이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