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 사목실 폐지… 기독기업 정체성 버리나

연말까지만 사목실 운영… 직원 정기예배도 전면 중단, 그룹 내 교회 16곳도 폐쇄 수순

이랜드 사목실 폐지… 기독기업 정체성 버리나 기사의 사진
이랜드 직원들이 2015년 6월 서울 금천구 이랜드 가산사옥에서 열린 ‘이랜드 단기선교 학교’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위쪽 사진은 이랜드 신촌사옥 전경. 이랜드그룹 제공
기독교정신으로 설립된 이랜드그룹(회장 박성수)이 사목실을 폐지하고 직원대상 정기예배를 전면 중단하기로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랜드그룹이 기독교기업임을 포기하는 게 아닌지 교계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랜드 관계자는 4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2월 31일부로 사목실 문을 닫는다”며 “창사 이래 37년간 유지해 온 직원대상 정기예배도 중단된다. 앞으로 직원들은 자율적으로 예배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이랜드 사목 58명은 최근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랜드그룹 시설 안에 있는 16개 교회도 1년 유예기간을 거쳐 폐쇄된다. 퇴직 사목들에게 3개월치 전별금이 지급된다.

이와 관련, 정재철(아시안미션 대표) 이랜드 사목은 “기독교기업 포기는 아니다”라며 개혁적 측면을 강조했다. 정 사목은 “사목실 사목이 50∼60명이 되니 인사문제를 비롯 민원처리를 요청하는 이들이 많고 권력기관화 됐던 게 사실”이라며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사목실 개혁을 실천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저런 이유로 회사 안에 사목실이 있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사목실을 없애고 사목들이 활동하는 독립된 법인을 만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결정은 사목실 차원에서 결정했고, 박성수 이랜드그룹 회장에 보고해 허락을 받은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정 사목은 “박 회장이 왜 사목실을 폐지하려 하느냐고 이유를 물었다”며 “그래서 대기업에 특정종교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종교적인 갑질’이 될 수 있고, 한편으로는 사목실이 명령을 받는 현 체제로는 자율적인 사역을 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보고했다”고 전했다.

이랜드 사목들은 국내 처음으로 ‘직장 케어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미국형 ‘사목 회사(Marketplace ministry chaplin=MMC)’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미 3∼4곳 회사의 신청을 받았고 내년부터 신앙상담 및 목회자를 파견한다. 조만간 문화체육관광부에 관련 서류를 제출해 사단법인을 추진키로 했다.

정 사목은 “이랜드 그룹도 필요하면 직장 케어센터에 소속한 사목들을 초청해 예배 및 신앙상담을 하는 형식이 될 것”이라며 “사목실 폐지 후 ‘사목 없는 이랜드그룹’을 3개월간 연구·검토해 관련 보고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이후 필요하면 사목실이 부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랜드 사목으로 30여년 근무한 방선기 목사는 15일 서울 신촌 이랜드 사옥에서 퇴임예배를 드린다. 방 목사는 “이랜드그룹이 사목실을 폐지하는 게 맞는 것 같다. 회사가 종교기관도 아니고 사목실을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윗분들과 합의해 결정한 일”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랜드그룹이 내년 주식회사 상장을 앞두고 주주들을 의식한 사전 포석이 아닌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동안 ㈜뉴코아 ㈜해태유통 ㈜삼립개발 ㈜한국카르푸 등을 인수하면서 비(非) 기독교인들이 증가한 점도 기독교기업 유지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내년 종교인과세 실시를 앞두고 목사들을 퇴직시켜 미리 발을 빼려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박 회장은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 장로다. 하지만 2007년 이랜드 노동자들이 사랑의교회 앞에서 수십일간 천막농성을 벌이자 교회 장로직을 사임했다.

교계와 이랜드 크리스천 직원들은 안타깝다는 반응이다. 사목제도가 폐지되면 기독교 기업의 정체성을 상실하니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직원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이랜드 직원은 “그동안 사목을 비롯한 크리스천 직원들이 선교 열정 하나로 이랜드 기업을 사랑하고 열심히 일궈왔는데 갑자기 이런 결정을 내리면 어찌 하느냐”고 토로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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