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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손수호] 메콩강의 메아리

[청사초롱-손수호] 메콩강의 메아리 기사의 사진
콩밭 매던 어머니는 밭고랑이 젖도록 울었다. 아들 둘이 한꺼번에 월남에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것이다. 군의관과 통신병이라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편지를 사흘들이 받고도 수심이 가득했다. 저녁 무렵엔 ‘메콩강의 메아리’ 방송을 들으며 이역만리 아들의 안전을 어림짐작했다. 철부지였던 나는 형들이 배속된 청룡부대나 맹호부대의 활약상을 듣고 어깨를 으쓱하곤 했다.

전쟁이 끝나고 용사들이 죽어, 혹은 살아 돌아와도 베트남은 여전히 먼 나라였다. 당시 유행하던 ‘월남의 달밤’은 ‘먼 남쪽 섬의 나라∼’로 시작했다. 긴 해안선을 가진 반도인데도 굳이 ‘섬’으로 표기한 것은 작사자의 실수인지, 남국의 정서를 강조하기 위한 선택인지 알 수 없다. 아오자이나 열대어, 야자수 등속의 소품 외에 도무지 진지한 탐색이 없던 시기였다. 싫어하거나 회피했다.

그러던 베트남이 우리에게 바짝 다가왔다. 1992년 12월 22일 수교한 이후 사반세기 만에 가장 가까운 이웃이 됐다. 하루에 두 나라를 오가는 비행기가 20편에 이르고, 무역 451억 달러의 3대 교역국이며, 베트남 출신(27.9%) 배우자가 중국(26.9%)을 넘었다. 30만명이 참전해 총부리를 겨눈 나라, 전후에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사이를 감안하면 놀라운 관계의 발전이다. 궁합이 잘 맞는다는 이야기다.

이런 진전은 두 나라의 필요가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다. 공유하는 문화의 바탕 위에 통상의 이익이 부합한 것이다. 여기에는 과거에 머뭇거리지 않는 베트남의 실용적 경향도 크게 작용했다. 전후세대가 인구의 80%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가 베트남에 빚이 있다고 자꾸 드러내려 하거나, 갚으려고 나서면 되레 불편해하는 이유다. 수많은 전쟁을 치러온 역사를 알면 그런 입장이 이해된다.

이렇게 가까울수록 오해가 없도록 조심해야 한다. 예를 들면 다산과 호찌민에 관한 전문이다. ‘호찌민이 지하투쟁 시절에도 늘 목민심서를 들고 다녔다, 죽어 관 속에 부장된 책이다….’ 이는 유명 저술가나 문인들이 “호찌민이 부정과 비리의 척결을 위해서는 조선 정약용의 목민심서가 필독의 서라고 꼽은 사실”이라거나, “월남의 정신 호찌민/ 일찍이 어린 시절/ 동북아시아 한자권의 조선 정약용의 책/ 그 목민심서 따위 구해본 뒤/ 정약용의 제삿날 알아내어/ 호젓이 추모하기도 했던 사람”으로 표현한 것을 현지 가이드들이 인용하면서 확산됐다.

그러나 그동안 호찌민박물관이나 집무실 어디에도 목민심서가 발견되지 않았고, 여러 학자들의 논문에서 잘못된 기록임이 밝혀졌다. 호찌민이 한문에 조예가 있고, 모스크바에서 한인들과 교류했더라도 그 이상의 단서는 없는 것이다. 베트남 정부도 이 대목을 불편해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도 지난달 11일 세계문화엑스포를 축하하는 대통령의 메시지에 다시 등장했다. “베트남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호찌민 주석의 애독서가 조선시대 유학자 정약용 선생이 쓴 목민심서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수교 25주년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일 계기다. ‘메콩강의 메아리’나 ‘월남의 달밤’에서 머무는 의식의 지체를 넘어서야 한다. 베트남 이주민이 왔다면 얼굴이 비슷하다고 안도할 게 아니라 그들의 생활방식을 존중하는 식이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려주면서 그들의 문화도 배워야 한다. 학교에서는 더욱 그렇다. 배움터에 다문화 출신 가정이 많다는 것을 다양성과 개방성의 지표로 삼을 때 한 단계 성숙한다.

지난달 21일 마지막으로 배웅한 세월호 미수습자 5명에는 권재근·혁규 부자라는 베트남 다문화 가정이 있다. 이미 장례를 치른 한윤지(판응옥타인)씨가 혁규의 엄마다. 이들은 새로운 삶을 위해 서울에서 제주도로 이사 가는 길에 변을 당했다. 방현석의 소설 ‘세월’에는 이들 가족의 아픔과 더불어 바다와 배를 대하는 베트남 사돈의 서늘한 눈길이 담겨 있다. 우리는 베트남을 더 잘 알아야 한다.

손수호(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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