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채원호] 김영란법 개정 시급한가 기사의 사진
최근 국민권익위원회는 전원위원회를 열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부결시킨 바 있다. 개정안은 공직자 등에게 제공 가능한 선물의 금액을 농축수산물에 한해 기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이 골자다.

어느 법이든 시행 이후 문제점이 나타나면 개정해야 한다. 김영란법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법을 시행한 지 1년 남짓 지난 시점에서 성급히 개정할 필요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특정 품목에 대한 예외규정이 형평성에 위배될 소지가 있고 김영란법 입법 취지를 크게 후퇴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법 적용 대상 확대로 다소 논란이 있었지만 법 시행 이후 우리 사회는 적지 않은 긍정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지난 8월 한국행정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법 시행이 부패 문제 개선에 도움이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언론인을 제외한 모든 집단에서 79% 이상이 ‘도움이 된다’고 답한 바 있다. 이해충돌 상황에서 선물 제공이나 식사 접대 등이 적절한지 살피게 되면서 잘못된 관행이 개선되고 있는 것이다. 부정청탁 금지에 대한 사회 일반의 학습효과도 작지 않다.

총리나 장관이 업계의 요청에 따라 시행령을 개정하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지만 농가 외에 화훼업자나 요식업자들의 반발은 앞으로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일부 업계의 사정을 반영한 개정 시도가 이익 정치의 폐단을 되풀이하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공직자가 특정 집단의 대리인이 돼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지난달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T)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사회는 부패 척결을 위한 지속적인 제도 보완에도 불구하고 부당한 방법으로 공권력을 동원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상탁하청(上濁下淸)’형 부패 관행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

굳이 방산 비리, 원전 비리를 들먹이지 않아도 고위 공직자의 부패 수준이 간과하기 어려운 수준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국민권익위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부패해 있다’(매우 부패+부패한 편)는 응답 비율은 일반 국민(59.2%)이 가장 높고 전문가(55.2%), 기업인(43.7%), 외국인(26.2%), 공무원(14.0%) 순이었다. 일반 국민과 공직자 간 인식에 괴리가 크다. 공무원이 공직 권한을 사익 추구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된 청탁금지법의 취지를 생각할 때 공무원의 인식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국제투명성기구의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국가청렴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2016년도 평가에서 176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52위에 그쳤다. 2009년 39위, 2015년 37위까지 올라가기도 했지만 50위권 밖으로 추락한 것이다.

부패인식지수 조사가 시작된 1995년 이래 최저 순위다.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가진 국가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치권은 여야 할 것 없이 규정을 완화해 청탁금지법의 근간을 뒤흔들려 하고 있다. 국가청렴도가 어디까지 추락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와 1인당 국민소득(GNI) 수준 간 관계를 분석해보면 정(正)의 상관관계가 뚜렷하다. 청렴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국민 1인당 소득 수준도 높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부패 문제 해결 없이는 지속 가능한 성장이 어렵다는 말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의 부패 수준(CPI 기준)을 OECD 평균 수준으로 개선하면 실질 GDP는 8.36% 증가하고, 후생 증가 규모는 1583억 달러에 이른다.

부패를 규제하는 법으로 형법이나 공직자윤리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을 도입한 것은 부패 척결이 시대적 과제라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부패의 전형은 고위 공직자가 공직 권한을 부당하게 동원해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상탁하청이다. 정부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와 함께 부패에 대한 전방위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채원호(가톨릭대 교수·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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