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병호] ‘김정은 올림픽’이 안 되려면 기사의 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평창은 한반도 대결의 상징인 휴전선에서 고작 100㎞ 떨어져 있다”고 소개하는 걸 보고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연설 뒤 각국 선수들이 안전상 문제를 들어 평창올림픽 보이콧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런 움직임이 있을까봐 미리 평화올림픽을 강조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스포츠 행사가 ‘정치올림픽’으로 비치는 데 일조한 셈이 됐다.

‘평화’는 말뜻이 좋아 평화이지, 사실은 아주 정치적인 용어다. 게다가 올림픽과 맞물리면 국제정치와 직결된다. 평창올림픽 역시 평화가 끼어들면서 더 이상 순수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게 됐다. 많은 외신들이 그렇게 보고 있다. 심지어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얼마 전 내년도에 눈여겨볼 이벤트로 평창올림픽을 꼽으며 ‘정치와 스포츠가 대결하는 행사’라고 소개했을 정도다.

어쩌면 이제는 ‘김정은 올림픽’ 또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대결하는 올림픽’이 더 어울리는 표현일지 모른다. 북한이 참여해도, 불참해도 마찬가지다. 참여하면 김정은이 만들어준 올림픽이 되는 것이고, 불참하면 ‘반쪽 평화올림픽’이 되기 때문이다. 얼마나 어렵게 따낸 올림픽인데, 김정은이 좌지우지하는 대회로 성격이 변질된 건 많이 아쉬운 일이다.

게다가 도핑 혐의로 러시아 대표단의 출전 금지 조치가 내려지면서 평창은 국제정치의 수렁으로 더 깊이 빠져들고 있다. 러시아는 출전 금지를 서방 국가들의 ‘대러 제재’ 연장선이라고 반발한다. 외신은 벌써부터 평창올림픽과 내년 6월 러시아월드컵을 묶어 ‘양대 스포츠정치’ 이벤트로 부르고 있다. 그런 연계가 우리로선 하나도 좋을 게 없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대형 국제 행사는 한 나라의 틀 자체를 한 단계 도약시켜주곤 한다. 인프라 투자를 통한 경제적 효과나 한 나라가 해외에 상세히 소개되면서 얻는 관광산업 부흥, 국가 이미지 개선 효과만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것들보다 치르기 어려운 큰 국제 대회를 잘 치러낸 자부심과 자신감, 오랫동안 이를 준비하며 국민들이 갖게 되는 일체감, 나라 전체가 한 달간 빠져드는 흥겨운 축제 분위기 등이 더 중요한 결실이다. 이는 우리가 이미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치르면서 경험한 것들이다. 이런 것들이 종합돼 국격이 높아지고 한층 성숙된 사회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 평창올림픽 유치에 실패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 발전의 중요한 도약의 기회를 놓쳤다”고 애석해했다.

지금이라도 평화올림픽에만 함몰된 평창의 대회 취지 스펙트럼을 더 넓혀야 한다. 휴전선에서 40㎞ 떨어진 서울에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이 열릴 때 북한의 남침설이 파다했지만 외국인들이 지금처럼 겁먹지는 않았다. 어쩌면 지금은 외국을 향해 평화올림픽을 강조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점점 더 겁을 주게 될 것이다. 그 대신 한류스타들을 배출한 한국에서 열리는 문화 대회이고, 또 선진국이 주로 치른 동계스포츠 대회를 중진국인 한국이 치르는 의의를 설명하는 게 나을 수 있다. 오지의 상징이던 두메산골 평창이 선진 스포츠 행사장으로 탈바꿈한 성공 스토리를 강조해도 좋다. 해변과 바다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에게 파란 경포 겨울바다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나라 안으로도 국민들이 같이 준비하는 행사로, 동계올림픽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얼마나 잘 치러내야 하는지를 공유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축제 분위기를 한층 더 달궈야 한다. 온통 김정은의 결정만 지켜봐선 안 된다. 이렇게 큰 국제 행사가 두 달 후 열리는데 솔직히 너무 조용하지 않은가. 그렇게 분위기를 전환시키지 못하면 나중에 평창올림픽이 현 정부의 오점으로 기록되지 말란 법이 없다. 내부 평가는 고사하고, 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과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으로 크게 재도약하려고 벼르는 일본과 중국에 한참 뒤처지는 나라로 남을 수도 있다.

손병호 국제부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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