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손영옥] 광주비엔날레는 어디로 기사의 사진
대한민국이 비엔날레 공화국이 됐다. 단풍축제처럼 지역마다 열린다. 정부 공식 지원을 받는 것만 18개다. 비엔날레 유행병의 진원지는 광주비엔날레다. 1995년 창설돼 지난해 11회 행사를 치렀다. 아시아 최초다. 어느새 22년이 됐고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전국적인 모방 열풍을 낳았던 것이다.

그 원조 비엔날레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내부에선 ‘실험’이라고 하고, 외부에선 ‘개악’이라고 한다. 사립미술관인 아트선재센터 관장 출신의 김선정(52)씨가 지난 7월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에 선임되더니 어물쩍 내년 비엔날레 예술총감독까지 겸한 모양새가 된 현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재단은 지난달 중순 ‘상상된 경계들’이라는 내년 행사 주제를 발표했다. 11명이나 되는 큐레이터도 동시에 발표됐다. 김 대표가 선정한 사람들이다. 예술감독 1명이 구현하는 전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다수 큐레이터제’를 시도한다고 했다. 이미 2012년 자신을 포함한 6인이 실험했던 ‘다수 감독제’가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다니. 통상 비엔날레는 예술총감독이 전시 주제를 정하고 자신을 도와줄 큐레이터를 선정한다. 이번엔 예술총감독이 없으니 김 대표가 총괄 큐레이터 역할을 한다는 게 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결국 대표도 하고, 감독도 한다는 얘기다.

안을 승인한 16명의 이사 중 1명은 “전에도 대표가 뒤에서 (감독 역할을) 다 한 사례가 있지 않냐. 어차피 그럴 거면 둘 다 해보라는 뜻”이라고 대놓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실험”이라고 포장했다. 저간의 사정을 잘 아는 광주 인사는 “(김 대표가) 이것도 하고 싶어 하고, 저것도 하고 싶어 하는 사람 아니냐. 그 사람 스타일에 맞춘 거다. 국제적인 네트워킹이 좋다. 그 장점을 살려야 하지 않느냐”고 해석했다. 구멍가게 수준이라면, 사립미술관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이건 나랏돈을 포함해 93억원의 예산이 책정된 대규모 국제행사다. 여느 지자체의 15억∼16억원짜리 그렇고 그런 비엔날레와도 차원이 다르다.

나는 광주비엔날레가 키운 정신과 문화, 시행착오 끝에 안착시킨 시스템이 뿌리째 흔들리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과 불안감이 앞선다. 광주비엔날레는 글로벌 스타 감독의 산실이었다. 2010년 37세에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으로 뽑힌 이탈리아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는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이 됐다.

2008년 광주에서 총감독을 한 나이지리아 출신 오쿠이 엔위저는 2015년 베니스행을 거머쥐었다. 그는 이례적으로 한국의 젊은 작가 3명을 본전시에 초대했다. 그때 임흥순 작가가 사상 처음으로 베니스비엔날레 미술전 은사자상을 받았다. 광주가 키운 건 또 문화다. 지연·학연에 얽매였던 한국 미술계가 국제화되는 기폭제였다. 경쟁 자체가 국제화되다 보니 고질인 서울대·홍익대 미대 간 나눠먹기는 사라졌다.

1인 예술감독제의 문제점이 있을 순 있다. 그 해답이 이런 식의 파행은 아니어야 한다. 예술총감독은 없는데 큐레이터가 11명이라니.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큐레이터 출신이 대표가 됐으니 감독을 겸하면 된다고? 대표이사가 그렇게 할 일이 없는가. 광주는 어느새 ‘세계 5대 비엔날레’로 평가받는다. 그 명성을 지켜가야 할 막중한 업무가 있다. 네트워킹은 그런 데 쓰면 된다. 이사장을 맡던 광주 시장이 명예 이사장으로 물러나며 공석이 된 이사장 대행까지 맡고 있지 않나. 할 일이 더 많다.

감독 역할도 막중하다. 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콘텐츠는 백화점에서 늘어놓고 파는 상품이 아니다. 이것 저것 보여주는 뷔페 상차림이 아니다. 동시대 미술의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건 핑계로 들린다. 미술인이 동시대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중 하나의 관점을 골라 자신 있게 문제 제기하는 자리다. 두루뭉수리 협치가 아니라 예각의 뚝심이 필요한 자리다. 지나친 의욕은 무리수다. 하나는 내려놓기를 바란다. 공동감독제가 안 된다면 수석 큐레이터라도 뽑아야 한다.

손영옥 문화부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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