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일도 <6> 베델성서 연구모임서 수녀였던 아내와 첫 만남

아버지 별세 후 가톨릭 수도원 찾아다녀… 프리지어꽃이 웃는 듯 첫눈에 반해

[역경의 열매] 최일도 <6> 베델성서 연구모임서 수녀였던 아내와 첫 만남 기사의 사진
청년 시절 최일도 목사와 당시 수녀였던 김연수 사모가 함께 찍은 사진. 두 사람은 베델성서 연구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갑자기 별세하신 아버지가 주일성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을 받아 지옥에 갔다는 전도사의 발언은 참으로 긴긴 세월 상처로 남았다. “더 이상 그런 교회는 나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자 교인들은 위로는 못할망정 “아버지가 돌아가시더니 일도가 이상해졌고 타락했다”며 정죄만 일삼았다. 그로 인해 나는 교회에 대한 환멸을 갖게 됐다.

어린 나이였다. 기독교는 아니다 싶어서 가톨릭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됐다. 참으로 괴롭고 고통스러웠지만 난 모(母)교회와 어머니 곁을 떠나기로 작정하고 전국의 수도원을 찾아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많은 가톨릭 관계자들을 만났는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고마운 분은 김수환 추기경의 비서실장이던 홍인수 신부다. 그분이 오류동 성당의 주임신부였을 때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 수도 생활과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분의 서재에 있는 신앙서적은 거의 다 읽었다.

더 많은 책을 읽고 싶다 했더니 홍 신부는 신학대학 도서관만큼 많은 책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했다. 바로 지금의 아내가 당시에 수녀로 있던, 명동성당 바로 뒤에 있는 샤르트르 바오로 수녀원의 도서관이다. 그곳을 자주 찾아가 책을 뒤지고 잡히는 대로 정말 열심히 읽었다.

때마침 수녀원에서 베델성서 연구모임이 시작됐다. 지금의 영적 멘토인 박종삼(전 월드비전 회장) 목사님을 통해 베델성서 연구의 내용을 익히 들었던 터라 수녀들 틈에서 베델성서 공부 및 베델의 노래와 레크리에이션을 인도할 기회가 생겼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기회는 애초의 목적과 다르게 나와 한 수녀의 운명까지도 바꿔놓고 말았다.

베델성서 연구반에서 물론 난 청일점이었다. 여느 날처럼 악보를 펴놓고 교육내용에 맞는 음악을 선정하고 있었다. 그때 교육관으로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는 문을 등진 상태였고 소파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부터 들었다. 신선하고 맑은 목소리가 아름다운 멜로디처럼 들려왔다. “유 수녀님, 예고도 없이 찾아와 죄송해요. 저도 베델성서를 공부하려고 왔어요.”

“아네스 로즈. 잠시만요. 아참 두 분 서로 인사하세요. 이분은 수사 신부가 되길 원하는 최일도 전도사님. 그리고 이분은 김 아네스 로즈 수녀님이에요. 계성여중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지요.” 그제야 뒤돌아봤다. 키가 훌쩍 크고 얼굴이 하얗고 목이 가느다란 수녀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하얀 프리지어꽃이 웃는 듯했고 코스모스가 내게 인사하는 듯했다. 난 그만 황홀경에 빠졌다.

인사를 나눈 뒤 성서연구반 담당수녀와 대화를 나누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었다. 천진스러운 얼굴에 함박웃음을 머금고 이야기하는 그 수녀가 왜 그토록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정말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이미 하나님께 자신의 전 생애를 봉헌한 수도자인데 말이다. 알을 깨고 막 나오는 햇병아리의 솜털과도 같은 의식의 발아가 어쩌면 그리도 아프던지.

그날부터 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녀를 만난 이후 일기장엔 온통 그녀 이야기로만 가득 찼다. 그날부터 잠들기 전, 그리고 하루가 시작되는 가장 순결한 새벽의 첫 시간이면 어김없이 언제나 목마른 그리움으로 사랑의 시를 썼다. 하루도 빠짐없이.

정리=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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