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김지방]  실패한 농담 기사의 사진
가수 이효리가 좋아진 건 그녀가 “내 이름은 이효리, 거꾸로 해도 이효리”라고 드립(말장난)을 쳤을 때다.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에서 부모님이 지어주신 자기 이름으로 장난을 친다는 건 속세의 사단칠정에서 약간은 자신을 떼어놓았다는 의미다. 그 정신적인 여유가 좋았다.

지난주 페이스북에 내 이름이 태깅(이름붙임)된 사진에 어떤 분이 이런 댓글을 쓰셨다. “죄송합니다. 이름 때문에 웃음이 ㅎㅎ”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다. 흐뭇했다. 이름만으로 누군가에게 웃음을 줄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으니까 1980년쯤 됐던 것 같다. 집에 있는 검은색 다이얼 전화기로 친구집에 전화를 걸었다.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친구 어머님이 전화를 받으셨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 친구 김지방이라고 합니다. ○○이 집에 있으면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전화기가 집에 한 대 뿐이던 그 시절의 전화 에티켓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친구 어머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시외전화 왔다. 빨리 와서 받아랏!” 시외전화 통화 요금이 시내전화의 몇 배가 되던 시절을 모르는 분들께는 통하지 않는 얘기지만 실화다.

다음 에피소드도 구글이 자동번역 서비스를 처음 내놨던 몇 해 전의 실화다. 처음엔 알파벳 쓰는 나라끼리만 번역해주다 이내 한국어와 영어를 자동으로 번역하는 기능도 추가됐다. 신기해서 내 이름을 넣어봤다. 구글은 이렇게 번역해줬다. ‘steam zone(스팀존)’ 내 이메일이 Fatty Kim(패티김)이고 가끔 Country Kim(컨트리김)으로 불러주는 분들도 있었지만 뜨거운 증기가 치솟는 사우나가 연상되리라곤 생각도 못해봤다. 과연 인공지능!

현재 진행형 에피소드도 있다. 어느 날 평안한 마음으로 서울 시내를 배회하는데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버스에 이런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지긋지긋한 지방이, 썩 내려!” 11글자 중 지방이라는 3글자만 유독 빨간색이었고, 그 아래에는 365일 살을 빼준다는 어느 병원 이름이 있었다. 이 병원에선 빼야 하는 체중을 지방(脂肪)이라는 캐릭터로 만들어서 여성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변태로 묘사한 광고를 여기저기 틀어대고 있다. 딱히 기분 나쁠 것은 없었는데 반전이 있었다. 이 지방이 캐릭터가 인형으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거리에선 포동포동한 이 인형을 흰색 하늘색 노란색 분홍색으로 만들어 하나에 5000원씩 팔고 있다. 인형뽑기 기계 안에도 있다. 지하철에서 어느 승객의 가방에 열쇠고리처럼 달려 있는 지방이를 종종 발견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 같은 곳에서 내 이름으로 검색하면 “귀여워 ㅋㅋㅋ” “갖고 싶어”라며 발버둥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도 하나 사서 걸고 다닐까 하다가 남우세스러워 그만뒀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화가 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소중한 지면에 시시껄렁한 얘기나 늘어놓고 도대체 무슨 얘길 하려는 거냐고. 사실은 이번 칼럼에서 알베르 카뮈가 1945년 8월 30일 콩바(Combat)지에 쓴 사설을 인용하며 과거청산 문제를 예리하게 논할 생각이었다가 막판에 마음을 바꿨다.

영화 렛미인(Let Me In)의 후속편 같은 이름을 가진 배우 유아인씨 일 때문이다. 자신을 폄하한 네티즌에게 “애호박으로 맞아봤음?(코찡긋)”이라고 트위터에 쓴 일이 페미니스트 논쟁으로까지 번져 시끌벅적하다.

내가 보기엔 그냥 부주의해서 실패한 농담일 뿐인데 다들 너무 진지하다. 이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곳곳이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잠시 정의의 횃불을 내려놓고 함께 웃어보면 어떨까 싶어 내 이름을 제물로 내놓았다.

“농담을 주고받는 것이 인간의 따뜻함을 느끼는 열쇠가 될 수 있다면…”(가즈오 이시구로, ‘남아 있는 나날’)

김지방 사회부 차장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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