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박지훈] 국경시장에 가면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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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숨을 거둔 건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던 지난해 11월이었다. 위중한 상태로 투병 중이었으니 예고된 비보이긴 했다. 하지만 부음을 듣고서도 한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때까지 내게 죽음이란 가닿을 수 없는 신기루 같은 것이었는데 고작 한 살 터울의 사촌형이 세상을 떠나버리니 황망할 수밖에 없었다. 난생처음 죽음의 실체를 마주한 기분이었다. 그해 여름, 병상에 누워있는 형을 처음 만나러 갔던 날이 기억난다. 병세가 어떤지, 퇴원하면 뭘 하고 싶은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형은 추억담만 간단없이 늘어놓았다. ‘최후’를 앞둔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저 멀리 흘러가버린 옛날이야기만 했다. 이런 얘기가 대표적이었다. “기억나냐? 우리 어릴 때 너희 집 창고에서 불장난했다가 엄청 혼났잖아.”

내 머릿속에선 어사무사하기만 한 유년기의 기억.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그날의 광경이 떠올랐다. 창고를 가득 채운 매캐한 공기, 불길을 잡을 방법을 몰라 허둥대던 우리, 심하게 야단치던 엄마의 표정…. 그 시절 나는 형을 무람없이 대했다. 형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도대체 난 그때로부터 얼마나 멀리 떠나와 버린 것일까. 어쨌든 집으로 돌아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의 모든 순간을 오랫동안 붙들고 살아야겠다고. 상처를 덜 받으려면 무언가를 잘 잊는 게 중요하다 여겼는데. 그건 틀린 생각이었다고. 모든 기억이 모여 행복의 내재율을 만드는 법이라고. 이탈리아 사상가 노르베르토 보비오의 말처럼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바로 우리”인 법이니까.

얼마 전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시 한 편에 귀가 솔깃해진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그 시에는 기억과 망각 사이를 오가는 덧없는 생의 풍경이 담겨 있었다. ‘화양연화’라는 제목만큼이나 촉촉한 작품이었다. ‘모든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잘 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 속 어깨를 겯고 꽃 장화 탕탕 물장난 치며/ 슬픔 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모르는 오누이인 듯 살아가거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

굳이 저 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기억과 망각의 문제는 수많은 예술 작품의 땔감이 되곤 한다. 당장 떠오르는 작품은 김성중이 쓴 판타스틱한 단편소설 ‘국경시장’이다. 사기를 당하고 무참한 기분으로 8개월째 외국을 떠도는 남성이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그는 여행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과 N국과 P국의 접경 지역을 돌아다니다가 강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소년들을 만난다. 요깃거리가 필요하다고 하자 소년들은 이런 말을 쏟아낸다. “국경시장에 있어요” “보름달이 뜰 때마다 장이 서요” “뭐든지 다 있어요”….

이들은 소년들의 안내를 받아 국경시장에 들어선다. 알전구로 어둠을 밝힌 노점은 휘황찬란했고 매대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에 맞닥뜨린다. 국경시장에서 화폐는 별무소용이었다. 뭔가를 사려면 손톱만한 크기의 노르스름한 조각이 필요했다. 소년들만 잡을 수 있는 물고기의 비늘이었다. 비늘이 곧 화폐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비늘을 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환전소에서 자신의 기억을 팔아야 비늘을 얻을 수 있었다. 무전취식을 할 순 없는 노릇이니 일행은 기억을 팔기 시작한다. 쓸모가 없다고 판단되는 유아기의 기억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그 옛날 고통의 기억을 판다. 문제는 그렇게 구한 비늘을 흔전만전 써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온갖 기억을 팔아 닥치는 대로 물건을 사고 음식을 사 먹는다. 그러다가 비늘이 떨어지면 다시 환전소로 향한다.

만월(滿月)의 밤이 끝나갈 때쯤 이들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 일행은 기억을 모두 탕진해버리고 만다.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현실에서 국경시장 같은 곳이 존재할 리는 없다. 이건 환상적인 분위기를 띤 소설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누구나 상상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만약 국경시장이 실재한다면 어떨까. 소설 속 국경시장은 비극의 공간이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컨대 우리는 그곳에서 망각의 언덕 너머로 사라진 기억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기억들은 앞서 소개한 ‘화양연화’에 담긴 시구처럼 ‘슬픔 없는 나라’에서 ‘철모르는 오누이인 듯’ 살아가고 있으리라. 올해 잊어버리고 만 소중한 기억은 얼마나 될까. 당신도, 나도 자문해보았으면 한다. 다시 세밑이 가까워졌으니까 말이다.

박지훈 문화부 기자 lucidfall@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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