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유엔에서 北 제명이나 자격정지를 기사의 사진
유엔의 기본정신과 목적은 국제 평화와 안전의 유지, 인권 보호와 신장,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이다. 모든 유엔 회원국은 이를 약속하며 유엔에 가입했다. 1991년 북한이 우리나라와 동시에 유엔에 가입할 당시만 해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됐던 이유다.

그러나 북한은 유엔 가입 이후 정반대 행동만 보였다. 핵무기를 몰래 개발하다 발각되자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고, 이후 6자회담 등 국제사회의 평화적 해결 노력을 무위로 만들었으며, 유엔의 잇따른 대북 결의에도 6차례 핵실험과 수십 차례 미사일 시험발사 도발을 이어갔다. 또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포격 사건 등 걸핏하면 정전협정을 위반하며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기도 했다. 인권 문제도 매우 심각하다. 북한 주민의 경우 여전히 이동의 자유 등 기본적인 인권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있으며, 정치범 수용소 내 참혹한 인권 유린 실태도 개선될 조짐이 없다. 최근 죽음을 무릅쓰고 우리나라로 귀순한 북한 병사 몸에서 많은 기생충이 발견돼 충격을 안겨준 사건 역시 김정은 정권의 폭정이 얼마나 혹독한지 잘 보여준다. 이러니 ‘북한=불량국가’라는 지적은 당연한 이치다.

특이한 점은 북한이 유엔의 대북 제재에 반발해 수시로 ‘유엔은 미국의 앞잡이’라고 공격하면서도 유엔 탈퇴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19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 15형 시험발사 성공을 알리는 북한의 정부성명에도 이 같은 의사가 담겨 있다. 성명 말미에 ‘평화애호국가로서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위한 숭고한 목적의 실현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밝힌 부분이 그것이다. 얼토당토않은 궤변이지만, ‘평화애호국가’를 강조한 건 ‘모든 유엔 회원국은 평화애호국가(Peace loving state)’라는 유엔 헌장을 연상시킨다. 어떡해서든 유엔 회원국으로 남아 있겠다는 속내가 읽힌다.

왜일까. 유엔의 활용가치가 적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회원국으로 언제든지 유엔을 선전의 장(場)으로 이용하는 게 가능하다. 실제로 북한은 틈만 나면 유엔에서 미국이 북한 체제를 전복시키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는 등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 유엔 산하기구를 통한 대북 지원도 북한으로선 놓칠 수 없다. 북한은 자연재해를 당하거나 식량난에 처했을 때마다 유엔에 도움을 요청했고, 유엔은 산하기구를 통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북한으로선 가뭄에 단비 같은 손길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이중적 행태는 지난 5일부터 9일까지 이뤄진 제프리 펠트먼 유엔 사무차장의 방북 결과 보도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북측은 한반도 정세가 위중하게 돌아가는 건 전적으로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는 점을 유엔 측에 설명했고, 유엔 측은 유엔의 인도주의 사명에 맞게 협조가 진행되도록 노력할 의향을 피력했다는 게 조선중앙통신 보도의 핵심이다. 앞으로도 유엔에 남아 최대한 이용하겠다는 의중이 담겨 있다.

유엔 회원국 제명 언급에 발끈한 적도 있다. 2011년 9월 윤병세 외교장관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평화를 사랑하는 유엔 회원국 자격이 있는지 재고해야 할 시점”이라고 밝히자 북한은 이같이 반응했다. “존엄 높은 우리 공화국의 국제적 지위를 헐뜯어 보려는 가소로운 망동이다. 치유불능의 정신병자가 아니고서는 우리 공화국의 국제적 지위를 감히 시비할 수 없다.”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유도하기 위해 이 점을 지렛대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극도로 꺼리는 유엔 축출 카드로 압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때마침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지난달 말 “북한의 유엔 회원 자격 제한도 옵션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말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결의안에는 북한의 추가 도발 시 회원국 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는 경고가 포함돼 있다.

실현 가능성은 적은 편이다. 유엔 안보리 동의가 필요한데 중국은 물론 러시아가 찬성할 소지가 많지 않은 탓이다. 유엔 역사상 회원국이 제명된 사례가 없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인종분리정책으로 74년부터 회원국 자격을 사실상 정지당한 게 유일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역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특이한 케이스다. 북한처럼 유엔을 비웃은 나라는 없었다.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거나 경제적 관계를 중단하는 국가들도 계속 늘고 있다. 유엔에서의 제명이나 자격정지 등을 적극 추진할 때가 됐다고 본다. 북한은 스스로 평화애호국가로 변하지 못한다.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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