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일수] 책임 과잉의 시대 기사의 사진
요즘 들어 정치인들 입에서 유행처럼 오르내리는 말이 ‘책임’이란 말인 것 같다. 최근 발생한 영흥도 낚싯배 침몰사고로 10명이 넘는 희생자가 나오자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의 무한책임’을 언급했다. 뒤이어 이낙연 국무총리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문재인정부의 ‘운명적 책임’이라고 말했다. 조국 민정수석도 낙태죄 처벌에서 ‘남성과 국가의 책임’은 빠지고 여성들만 책임을 진다는 취지의 말을 입에 올렸다. 물론 이런 류의 책임이란 말들이 어떤 맥락에서 무슨 복선을 깔고 또 무슨 의미를 지닌 말인지 필자로서 다 헤아리기 어렵다. 그래도 이 정도면 책임이란 말이 문재인정부에서 공적으로 너무 쉽게, 너무 빈번하게 등장하는 언어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남성책임, 국가책임, 국가 무한책임, 운명적 책임이니 하는 등의 말은 실체의 윤곽이 불분명할 뿐 아니라 핵심내용도 명확하지 않다. 그것이 추상적 고담준론인지 단순히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것인지 속내를 알 수는 없다. 만에 하나 그것이 특별한 밑바탕도 없이 공적으로 남용돼 유행처럼 번지면 기우이기를 바라지만, 법적·윤리적으로 엄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진정한 책임의 의미를 희석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것 같은 이런 정치적 미사여구도 적재적소에 알맞게 쓰이지 않으면 어떤 막말 못지않게 사회적으로 매우 소중하게 쓰이는 책임이라는 공공재를 허무는 역기능을 할 수 있다. 사람의 이름 앞에 붙여지는 명칭과 타이틀의 인플레이션이 우리 사회에서 본래 그것이 갖고 있는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떨어뜨린 예와 같다. 인간의 존엄과 인권, 얼마나 무거운 말인가. 그렇지만 그것도 용처 가리지 않고 아무데다 끌어다 쓰면 길가에 떨어진 동전 한 닢 같이 사람들의 주목도 끌지 못하는 가벼운 말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원래 도덕적인 책임은 높은 데서 양심을 향해 부르는 소리에 응답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 소리에 적절하게 응답하는 사람은 책임을 잘 감당한 것이고, 적절히 응답하지 못한 사람은 비난과 가책을 받는다. 그래서 책임의 원어적인 의미는 답책(答責)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이에 비해 법적인 책임은 인간의 의지의 자유와 그에 터 잡은 행위의 불법을 전제로 한 것이다. 잘못을 전제하지 않는 법적 책임이란 있을 수 없다. 인간의 인격의 표현이 아닌 것은 인간의 행위범주에 들어올 수 없고,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자기행위의 모든 예견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자기책임을 져야 할 부담을 안고 살아가는 존재인 셈이다.

개인책임을 넘어 연대책임이나 단체책임 같은 복합적인 책임을 묻는 일은 윤리에서나 법에서 매우 조심스럽고도 신중한 과제에 속한다. 특히 법적으로 개인책임을 넘어 이런 과외의 책임을 물으려면 물론 실정법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그 한계는 분명하고 제한적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가책임의 인정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공무원의 불법행위에 대한 국가의 배상책임은 국가가 과연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 주체인가라는 논쟁에 오랫동안 휩싸여 왔었기 때문이다. “왕은 악을 행할 수 없다”는 영국의 오래된 법언처럼 윤리적으로 국가도 악을 행할 수 없다는 당위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가려서 책임져야 할 상황에서 쉽게 무한책임 같은 과장법을 입에 담는 화법은 실제 책임소재를 얼버무릴 소지가 다분하다. 만약 며칠 전에 생긴 영흥도 사망자 친족들이 공무원의 늑장 대응을 이유로 국가배상책임을 묻는 소송을 제기한다면, 국가의 무한책임을 공언한 문 대통령의 말 때문에 정부는 응소를 포기하고 당사자들의 요구를 있는 대로 다 들어줘야 하는 것인가. 세월호 경험이 언뜻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어떤 사태에 대한 국가의 무한책임이란 말은 아무래도 너무 나갔든지 너무 가볍든지 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워 보인다. 국가책임이 지나치다보면 개인의 책임감이 방만해져 모든 책임을 국가에 떠넘기는 풍조가 나타날 수 있는 반면 국가가 국민을 철부지 취급하여 매사에 간섭하려드는 전제화의 위험도 있다.

적폐청산 폭풍 속에서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무한책임의 요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이라도 검찰이 수사해 진실을 밝히라는 목소리에는 귀를 의심할 지경이다. 개인의 자유와 안전을 위한 오래된 법치국가 원리들마저 이런 폭풍에 흔들리게 되면 점차 시민들은 불안에 휩싸이게 되고, 자유민주주의도 겁에 질리게 된다. 책임 과잉이 실제 소중한 책임의식을 마비시킨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지혜 있는 정치가는 이런 극단을 경계할 것이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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