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노트] 내 탓, 네 덕 기사의 사진
빌헬름 렘브루크 ‘추락한 남자’
배려와 존중이라는 단어를 무척 좋아했다. 좋아한다, 라고 써야 마땅하겠지만 이 단어들에 대한 사랑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지금껏 ‘나와 함께 있는 사람은 그가 누구든 존중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다’라는 바람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친절해야 하며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상대가 만족할 수 있게 하자’라는 생각을 실천하고 싶었다. 물론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고, 나는 배려했지만 상대는 그런 느낌 못 받았다고 여길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려와 존중이라는 단어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지금껏 노력하며 살았다고 아주 조심스럽게 자부한다.

논현동 골목 뒤에 있는 오래된 칼국수집에서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에 서 있는데 탁자 위에 ‘내 탓, 네 덕’이라는 글귀가 담긴 작은 액자가 눈에 띄었다. 점원 아주머니에게 “멋진 말이네요”라고 했더니 그분은 내게 한수 가르쳐준다는 듯이 “요즘 이렇게 살면 화병 들어서 빨리 죽어요”라고 했다. “그러게요”라며 나도 모르게 맞장구치고 말았다. 이기심을 채우려고 타인을 무시하는 일이 잦아진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리라.

내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이런저런 자리에 “섭외하고 싶다”는 전화를 가끔 받으면 웬만한 일은 뒤로 미루고 부탁을 다 들어주려고 애쓴다. 보상도 크지 않고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는 일인데도 ‘어렵게 부탁하는 것일 텐데 거절하면 그 사람 마음이 아플 수도 있잖아’라는 생각 때문이다. 거절당했을 때의 느낌이 어떤지 잘 아니까 ‘나 때문에 남들이 그런 감정을 경험하는 일은 최대한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고.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어렵게 일정 조절하고, 이런저런 조언까지 건넸는데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후속 연락을 끊어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내가 먼저 무엇을 하겠다고 나선 것도 아니고, 먼저 연락 취해 놓고 필요 없어지면 가타부타 양해 전화 한 통 없었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자’라는 말을 지키고 살려면 그만큼 속앓이를 해야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씁쓸해졌다. ‘내 탓, 네 덕’ 하고 살면 화병 난다던 칼국수집 아주머니의 말이 귀에서 사라지지가 않는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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