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12월 대선의 추억’ 깊이 간직했으면 기사의 사진
한 장만 달랑 남은 12월 달력이 을씨년스럽다. 공휴일 표시로 ‘빨갛게 적힌 20’은 생뚱맞기까지 하다. 또 다른 빨간 숫자 ‘25’는 희망을 고대하는 성탄절이지만, ‘20’은 7개월도 전에 이미 벌어진 ‘19대 대통령선거일’이라고 쓰여 있다. 미래와 과거가 뒤섞인 듯하다.

해마다 요맘때만 되면 나는 가슴앓이를 한다. 특히 올해는 어머니가 소천하신 지 20주년을 맞이하기에 더욱 그렇다. 1997년 12월 18일은 15대 대통령선거일이었다. 연명치료를 마다한 어머니는 그즈음 죽음을 넘나들고 있었는데 병상에서도 TV를 켜놓으라는 신호를 하실 정도로 그날 선거에 적잖은 관심을 보였다.

15대 대선은 그야말로 박빙의 대결이었다.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는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겨우 1% 포인트 앞서 있었다. 개표가 시작되자 초반에는 이 후보가 엎치락뒤치락 우위를 점하는 듯하다 자정을 넘기면서 김 후보가 1% 포인트 남짓의 우세를 줄곧 이어갔다. 그 과정을 어머니는 내내 지켜봤다. 눈을 감고서도 개표방송에 귀를 기울이는 듯했다.

19일 새벽으로 접어들면서 어머니는 평안한 얼굴로 깊은 잠에 빠졌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새벽 4시를 넘어서자 TV에서는 ‘김대중 후보 당선확정’을 알리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곧이어 우리 가족은 담당의사로부터 어머니의 운명판정을 들어야 했다. 이후 대통령선거일 즈음만 되면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른다.

생전에 정치에 별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고,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내색도 않던 고인이 그날은 왜 그리 큰 관심을 보였는지 참 의아하다. 마치 선거결과를 지켜본 후에나 길을 떠나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했다. 그 모두가 내게는 잊을 수 없는 ‘12월 대선의 추억’이다. 그것은 어머니와의 사별이자, 그 과정에서 장삼이사(張三李四)에 불과한 고인이 보여준 새 지도자의 탄생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었다.

이제 더 이상 ‘12월 대선의 추억’은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아닐지 모른다. 개인적으로도 어머니와 얽힌 기억을 자극하는 재료가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다. 5년마다 맛봤던 기억의 호사가 이제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도 싶다. 그러나 한국정치사에서 ‘12월 대선의 추억’은 결코 잊혀서는 안 된다. 되레 깊이 기억하고 간직해야 옳다.

87년 6월 민주항쟁을 통해 대통령직선제를 포함한 6공화국 헌법이 반포·시행되면서 그해 12월 13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이후 ‘12월 대선’은 5년마다 반복됐다. 당선자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로 이어져온 ‘12월 대선’에 숱한 사연이 녹아 있음을 감안하면 30년 만인 올 12월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리 보인다. 들썩거리는 잔치판 풍경이나 당선자와 지지자들의 함성이 없어 아쉽다는 얘기가 아니다. 빨간 숫자 ‘20’이 웅변하고 있는 것도 철 지난 바닷가 풍경을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된 12월 대선의 탄생배경과 줄곧 이어졌던 5년 만의 선거잔치가 없어지게 된 배경에 대한 질문이라야 맞다.

6월 항쟁에서 시작돼 대통령직선제로 맞이한 12월 대선,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한국정치사 최대의 격변이 벌어진 끝에 사라지게 된 12월 대선에 대해 늘 곱씹어봐야 한다. 그것은 한국정치사의 자랑이자 아픔이다. 5년마다 지지자들을 앞세워 새 길을 모색한다며 이합집산도 했고 당선자들 모두 숱한 개혁과 희망을 외쳤지만 한국정치는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듯 편안치 못했음을 돌이켜봐야 한다. 자랑스러운 결실이 자꾸만 훼손되는 듯한 이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지난 5월에 탄생한 문재인정부의 성과를 평가하기는 아직 성급할지 모르겠지만 대립의 정치는 달라질 기미가 없다. 야권의 저주 섞인 분노가 난무하고, 그럴수록 장삼이사의 가슴앓이는 깊어만 간다. 자신들만의 책임은 아닐지라도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새 정부의 노력이 부족한 것만은 부인하기 어렵다.

12월 대선의 추억이 깊이 각인돼야 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민주화라는 목표로 걸어온 30년의 성과가 결과적으로 새로운 시작을 낳았다는 인식이 그것이다. 이를 더욱 보완하자면 상대에 대한 인정과 배려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새로운 시작을 지키는 길이다.

한국정치가 거듭나는 꿈, 그것이 바로 12월 대선의 추억으로 기리는 세계가 아닐까 싶다. 이제 곧 새 생명으로 우리 모두를 깨우는 크리스마스도 맞이할 테니. 어쨌거나 오는 19일엔 어머니의 유골을 모셔놓은 남양주의 ‘안식의집’에라도 훌쩍 다녀와야겠다.

조용래 편집인 jubi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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