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사자성어 기사의 사진
한자는 의미 전달에 탁월한 문자다. 간결하면서도 압축적인 글귀는 메시지를 분명히 옮긴다. 조어의 경제성이 뛰어나다. 비유와 풍자의 맛 또한 한자의 매력이다. 에둘러 표현하는 수단으로 널리 쓰인다. 은유와 상징을 통해 화자의 뜻을 전한다. 가볍게 벴으나 푹 찌른 것 같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사자성어(四字成語)는 한자의 이런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낸다.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이 사자성어를 즐겨 활용하는 것도 이 같은 특질 때문이다. 대놓고 말하지 않더라도 네 글자의 힘으로 자신의 함의를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쓴 사자성어 휘호는 ‘민족중흥(民族中興)’이었다. 대한민국의 발전을 늘 염원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각각 즐겨 선택했던 ‘대도무문(大道無門)’과 ‘以民爲天(이민위천)’에는 정치인으로서의 궤적과 지향점이 들어 있다.

사자성어는 옛 글에서 큰 울림이 담긴 장면을 끌어올려 현 시대에 통찰과 안목을 전하는 경우가 많다. ‘차고술금(借古述今)’이다. 한양대 정민 교수는 저서 ‘일침(一針)’에서 네 글자밖에 안 되는 옛 글로 내면의 웅숭깊은 성찰,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그는 막막하고 앞이 캄캄하면 안 보이는 앞으로 더 나갈 게 아니라 뒤를 돌아보는 것이 맞다고 했다. 옛날이 답이란 말이 아니라 묵직한 말씀의 힘은 시간을 뛰어넘고 과거에 유효했던 의미는 지금도 위력적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교수신문이 2001년부터 매년 연말에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에는 사회상과 시대정신이 반영돼 있다. 교수신문은 17일 올해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꼽았다. 전국의 교수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선정했다. 직역하면 사악한 것을 깨뜨리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환언하면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져 파사에만 머물지 말고 현정으로 나아가라는 것으로 읽힌다. 일부가 논란으로 삼는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가운데 전자에 방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2위로 오른 것은 거문고 줄을 바꿔 맨다는 뜻의 ‘해현경장(解弦更張)’이다. 새 정부가 국정의 혼란스러움을 정리하고 나라를 바르게 운영하라는 요구가 반영된 것 같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그동안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삶이 그만큼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내년 이맘때엔 따뜻하고 희망적인 것을 만날 수 있을까.

정진영 논설위원, 그래픽=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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