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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풍향계-박명호] 자유한국당,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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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는 한 번 죽지만 정치에서 죽는다는 건 다시 살아나기(재기하기) 위한 것이다.” 정치 지도자의 실패와 재기를 다룬 책에 나온 말이다. 20세기 들어 권력 정상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물러났다가 정치적 재기와 권력 복귀에 성공한 사례로는 영국 처칠, 인도 간디, 프랑스 드골, 아르헨티나 페론, 스웨덴 팔메, 이스라엘 라빈 그리고 캐나다 트뤼도 등을 들 수 있다. ‘20세기의 정치적 재기’라는 책이 알고 싶은 건 정치적 복귀를 위한 조건이다. 개별 정치인을 다룬 책의 결론을 정당 같은 정치집단에 적용하는 건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정치적 재기와 복귀를 위해서는 ‘예측할 수 없는 행운’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눈길이 간다.

행운을 기대하는 자유한국당의 모습과 중첩된다. 변화하는 바깥세상엔 관심 없고 오직 내부 싸움만 중요하다. 그들은 상대의 실책이나 자책골을 계기로 정치적 대안으로 부상하며 결국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던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런가, 자유한국당의 기대가 전적으로 틀린 것도 아니다. 하지만 행운은 정치적 성공의 필수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언젠지 모를’ 행운을 기대하며 위기 극복은 물론 재기까지 기대하기엔 보수정치의 위기가 구조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은 단기적으로는 박근혜 전 대통령 국정농단과 무능에 대한 분노였지만 길게 보면 보수정권에 대한 총체적 실망이기 때문이다.

유권자 이념지형의 변화를 보면 정치지형의 변화가 분명하다. 올 5월 초 조사에 따르면 ‘스스로 진보 성향’이라 밝힌 응답자가 34.5%로 보수 성향(25.9%)을 앞질렀다. 중도는 24.4%였다. 2012년 11월 조사에서 ‘보수 30.2%, 중도 29.7%, 진보 26.7%’와 정반대다. 지금도 보수정치는 몰락의 원인을 몰라 헤어나는 길도 모르는 상황이다. 지금이 가장 밑바닥이 아니라 아직도 침몰 중인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인적 청산과 세대교체’다. 위기의 본질은 보수정치가 아니라 보스정치였기 때문이다. 보수정치는 보스를 중심으로 기득권 세력화되었다. 친이와 친박이 대표적이다. 희생과 살신성인이 아니라 사익과 집단이익이 우선이었다. 탄핵안 투표 때 자유한국당 최경환 의원은 투표가 시작되기 전 자리를 떠 탄핵안 반대의 기록마저 남기지 않았다. 정치적 무책임이다.

자유한국당의 당무감사와 당협위원장 교체가 시작되면서 논란이다. 지도부는 “정무적 판단 없이 계량화된 수치로 엄격히 블라인드로 결정했다”지만, 반대쪽은 “친박계 찍어내기 표적감사로 토사구팽이자 후안무치이며 배은망덕”이라고 주장했다. 교체대상 당협위원장 대부분이 친박 인사라지만 진박(眞朴) 정치인 상당수가 빠졌고 TK지역을 두고 ‘친홍 사당화’ 주장도 제기된다.

국민 감동은 고사하고 여전히 제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희생도 없고 책임도 없으며 비전도 없다. 보스정치를 탈피하고 보수정치를 재개할 수 있는 계기는 더 멀어진 느낌이다. ‘보수정치의 세대교체’는 정체성 재정립과 함께해야 성공한다. 정체성 혼란이 자존감 위기로 이어진 상황이다. 세대교체는 보수 가치 재정립의 신호탄이다. 보수 가치의 대변자가 망한 거지 보수 가치가 망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상실된 보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은 ‘박정희 가치’에서 벗어나 21세기형 ‘개혁 보수’를 지향하는 것이다. ‘자유, 작은 정부, 시장경제, 법치, 책임, 사유재산 그리고 공동체 기여’는 대표적 보수 가치다.

다음은 보수 가치를 어떻게 정책적으로 실현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예산국회에서 자유한국당은 보수 가치 수호와 실현에 실패했다. ‘한국당 패싱’이랄 정도로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대안도 없었고 법인세와 소득세를 놓고도 갈팡질팡했다. 보수혁신의 출발은 세대교체와 가치 재정립을 통해 가능하다. 이는 기득권 포기와 책임 그리고 희생과 헌신을 통한 반성부터 시작이다. 자유한국당은 갈 길이 아직 멀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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