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삶] 겨울 색 기사의 사진
강원도 봉평의 흥정천
초록 나뭇잎과 꽃들이 사라진 겨울은 무채색이다. 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찬 공기 탓에 대기오염이 더해져 회색빛 세상이 되곤 한다. 사유의 계절인 겨울은 메마른 갈색만 남긴 채 맨살을 드러낸 나뭇가지에 안갯속 잿빛이 내려앉는다. 산과 들이 그러하듯 새들도 겨울에는 깃털을 회색으로 바꾼다. 까만 밤하늘에 내리는 눈발, 혹은 창백한 달빛, 숨죽여 엎드린 겨울은 색깔을 버리고 또 다른 성장을 모색한다. 활동이 줄어들면 생각이 깊어지고, 창의력이 솟아난다. 그래서 기나긴 겨울을 견디는 유럽에서 철학과 예술이 피어났다.

밝고 선명한 색이 언제나 좋은 것만은 아니다. 깊고 어두운 색은 세련미가 돋보이고 고급스럽다. 담백한 무채색은 색깔을 물리친 어두움과 밝음의 중간을 택한다. 색깔의 아무런 상징이 없는 무채색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남에게 여지를 내어주는 겸허함이 있다. 유채색은 존재를 구분하고 해체하지만, 무채색은 성격을 드러내지 않고 품위를 유지한다. 낮과 밤 그리고 날씨에 따라 밝기를 바꾸는 겨울 색은 지극한 절제의 아름다움과 비움의 정신을 제공한다. 하양, 회색, 검정에 이르는 무채색은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이성에 집중하게 만드는 색이다.

세상의 모든 색을 삼킨 무채색은 내면의 안식과 자유를 지향한다. 흑백영화처럼 색을 포기하면 내용이 살아난다. 무채색은 빛의 강약에 의해서 생겨난다. 차가움과 따뜻함, 긍정과 부정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성향을 보여준다. 그래서 단아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나아간다. 삶의 번잡함을 끊고 물체와 인간의 마음이 하나가 되는 지점에 있는 무채색은 색채 심리 측면에서 시각적인 평형상태를 유지하고 마음에 평온을 제공하는 색이다. 눈이 내릴 듯 서글픈 색으로 가라앉는 이 계절은 화려한 봄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성기혁(경복대 교수·시각디자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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