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동훈] 집단지성인가, 중우정치인가 기사의 사진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그들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 박기를 구하니 그들의 소리가 이긴지라.’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줘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누가복음 23장은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관리들이 예수를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에게 끌고 가 십자가에 처형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들은 예수의 죄를 도무지 모르겠다고 하는 빌라도에게 세 차례나 혐의를 번복하며 예수가 이스라엘 백성을 미혹했고,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을 금하였고,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였다고 주장했다.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금과 관련해서도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며 오히려 세금을 납부하라고 설파했음에도 이들은 막무가내였다. 결국 빌라도의 판단을 흐린 것은 대제사장 등이 지른 ‘큰 소리’였다. 빌라도는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태복음 27:24)’고 둘러댄다. 무고한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도 여론을 핑계로 자신은 책임을 교묘히 회피한 셈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의 국민소통 코너에 국민청원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시발은 문재인정부 출범 100일쯤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20일 ‘정부 출범 100일 기념 국민인수위원회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문재인정부는 국민들의 집단지성과 함께 나가는 것이 국정에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정치에 최대한 참여하는 직접민주주의 구현 방식의 국정 방향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여론 눈치를 보는 것은 예수가 활동한 2000여년 전 로마제정시대나 민주주의를 만끽하고 있는 현재나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 듯하다. 유엔 미래보고서는 인터넷을 통한 집단지성이 현재의 대의민주주의라는 정치체계를 무력화시켜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만들어놓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국민들이 국회 청원 코너를 외면하고 청와대로 달려가는 것은 문재인정부가 국민 직접 소통의 힘을 간파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예사롭지 않다. 그러나 사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큰 목소리에만 귀 기울일 경우 잘못된 결정으로 인한 후폭풍을 되돌리려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를 새만금 사태 등을 통해 목격해 왔다.

종교인 과세만 해도 그렇다.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예고 중인데 국무총리가 수정을 지시한 것은 일부 시민단체의 큰 소리를 지나치게 의식한 때문이 아닐까. 이들은 조세 형평에 맞지 않고 탈세 우려가 있다며 국민감정에 호소하고 있다. 종교활동비는 목회자나 신부, 승려의 소득이 아님에도 그들의 눈에는 종교인들이 잠재적 범죄자로만 비치는 모양이다. 어느 시민단체는 종교단체를 ‘지하경제’ 온상인 것처럼 폄하하며 소득세법 시행령 개정안 폐기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종교단체가 지하경제를 추구하고 있다면 교인과 불자들은 모두 검은돈(헌금과 시주)을 갖다 바치는 마피아 조직원이고 목사 승려 신부는 마피아 두목과 다를 게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내는 검은돈에 대해 국세청은 연말정산 기부금 공제를 회수하고 가산세를 물어야 할 것이다.

그간 종교계와 머리를 맞대고 과세안을 짜낸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은 더 이상 정부의 녹을 먹고 일할 자격조차 없다. 애써 만든 정책이 일부 시민단체의 큰 소리 때문에, 총리의 말 한마디에 뒤집히는데 굳이 좋은 대학 나와 행정고시 공부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앞으로 일선 공무원들은 윗사람 지시만 따르면 그만이다. 법을 고쳐 근로장려세제를 마련해준 국회의원들도 조세 형평에 어긋난 입법행위를 했으므로 국회를 당장 떠나야 마땅하다. 목소리만 큰 사이비 집단지성에 치여 더 이상 대의정치가 비빌 언덕도 남아 있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동훈 종교국 부국장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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