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형준] 협치가 행복이다 기사의 사진
한국인은 얼마나 행복한가? 2017 유엔행복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행복도 순위는 세계 55위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복지, 건강, 선택의 자유, 관용성, 부패인식 등을 기준으로 한 평가다. 한국의 구매력 기준 1인당 GDP(PPP)가 14위임을 감안할 때 격차가 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하는 ‘좋은 삶 지표’(Better Life Index)에서 한국은 38개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교육, 건강, 환경, 일과 여가 균형, 시민참여, 안전, 공동체, 주관적 행복감 등 삶의 질 지표와 소득, 주거, 일자리 등 물질적 조건을 합산해 내는 순위이다. 특히 한국은 공동체(38위), 환경(36위), 주관적 행복감(30위), 일과 삶의 균형(35위) 등에서 최하위권이었다.

유엔조사와 OECD 조사 공히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가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프랑스 독일 영국 미국 등 선진 강국들이 중상위권에 포진해 있다. 뉴질랜드 코스타리카 등 국민소득 수준보다 행복도가 높은 나라와 일본 한국 등 행복도가 국민소득보다 떨어지는 나라들이 대조적이다. 고행복국가의 공통 요인 세 가지가 있다. 지속가능한 경제, 통합지향적 정치, 신뢰 공동체가 그것이다. 경제가 흔들리거나 정치적 갈등이 심하고, 서로 손가락질하는 사회가 되면 행복도는 떨어진다. 10년 전보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의 행복도가 크게 후퇴한 이유다.

문재인정부는 출범하면서 ‘사람 중심 경제’를 내걸었다. 내년에는 ‘이게 삶이냐?’를 중심 화두로 삼는다 한다. 이를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성장제일주의를 넘어서 삶의 질을 중심에 놓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행복은 국가의 총량적 발전의 자동적 결과로 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자아실현과 행복을 지향하는 목적의식적 노력의 결과다. 로크를 필두로 이전 자유주의자들은 국가의 개입과 간섭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것을 우려해 소극적 자유로 전체주의에 대한 방어선을 쳤다. 20세기 자유민주주의의 전체주의에 대한 승리는 소극적 자유의 개가였다. 이에 비해 21세기 자유민주주의는 소극적 자유를 넘어서 오래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내걸었던 ‘좋은 삶, 즉 행복(eudaimonia)’을 향한 적극적 자유를 국가의 덕성으로 간주한다. 이런 시대적 흐름과 새 정부의 비전은 부합한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첫 해의 국정은 이를 위한 철학의 결핍과 전략의 협소성에 대한 의구심을 씻어내지는 못했다. 아직 8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5년 단임제에서 첫 해는 물리적 시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싹을 보면 잎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문재인정부의 행복 정책은 서민에 대한 ‘물질적 혜택’에 집중되어 있다. 비정규직을 줄이고, 최저 임금을 올려주고, 건강보험 혜택을 늘리고, 기초 연금을 늘려주는 방식이다. 속도의 적정성과 풍선 효과 등으로 논란이지만 서민들의 삶에 보탬이 되는 정책들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여러 지표를 보면 한국의 행복도가 낮은 것은 물질적 조건이라기보다 시민의식, 사회적 관계의 질과 문화의 수준 등 비물질적 요인들에 기인한다. 물질적 요소는 행복의 필요조건이지만 그것으론 불충분하다. 즐거움, 성취, 의미, 공감, 신뢰, 관용 등 시민들의 ‘삶에 대한 윤리적 심미적 해석 능력’을 키우지 않고서는 행복을 증진시킬 수 없다. 이런 행복의 덕목들을 꽃피우는 중심에 정치가 불가피하게 놓여 있다. 정치의 덕목이 곧 사회의 덕목으로 투영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위권 행복국가들 가운데 계급과 이념으로 갈라져 정치 갈등이 심한 나라는 없다. 왜 협치가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이다. 상대를 인정하고 합의를 중시하는 협치는 정치공학이 아니라 행복국가의 필수조건이다. 정치가 이분법적 갈등을 넘어 협치를 할수록 신뢰는 높아지고 공동체는 살아난다. 물질적 복지로 삶의 질을 높이는 길이 한계가 분명하다면 사실 가성비가 가장 높은 행복 정책은 협치를 하는 것이다.

말로는 협치를 내세웠지만 신 정권의 정치는 이분법적 계급적 시각이 진하게 묻어난다. 이전 보수 정권을 ‘악’으로 간주하는 적폐청산은 협치의 어젠다는 아니었다. 노동을 편들고 기업을 옥죄는 정책들은 경제와 통합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탕평 없는 인사, 노골적인 공영방송 장악 등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였다. 이로 인해 진영 대결의 양극화 정치는 개선될 기미가 없다.

분명히 말하건대 협치 없이 행복국가로 가는 대문을 열지는 못한다. ‘이게 삶이냐?’는 화두의 답은 통합과 포용의 국정 리더십에서 찾아야 한다. 2018년에는 꼭 보고 싶은 일이다.

박형준(동아대 교수·전 국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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