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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이기호] 고통의 또 다른 문장

[청사초롱-이기호] 고통의 또 다른 문장 기사의 사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만든 코엔 형제의 또 다른 영화 ‘시리어스 맨’에는 동시다발로 이런저런 악재를 만나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물리학과 교수 ‘래리’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유대인 래리는 율법을 잘 따르는 신자이자 누구보다 성실하고 강직한 교수였으며, 책임감 있고 다정한 남편이자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의 그런 삶은, 그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다. 그의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이혼을 요구하고(래리에게 집까지 비워줄 것을 요구한다), 그의 아들은 대마초를 구입한 돈을 갚지 못해 매일 학교에서 쫓기는 신세이며, 그의 딸은 래리의 지갑에 몰래 손을 댄다. 뿐만 아니다. 하나뿐인 그의 형은 도박으로 인해 곧 검찰에 불려나갈 처지이고, 무난히 통과될 것 같았던 그의 대학교 ‘정년보장’ 심사는 예상외의 암초를 만나 덜거덕거린다.

왜 이런 일들이 갑자기 자신에게 벌어지는가? 래리는 무언가 억울한 심정이 되어 신에게 따지고 싶어진다. 사랑이 많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이, 왜 이토록 인간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일까? 이 고통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숨어 있단 말인가? 영화는 내내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래리의 모습이 그려진다.

엊그제는 인간을 사랑한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내려보낸 크리스마스였다. 그 어느 때보다 사랑이 충만해야 할 그날에도, 뜻하지 않은 고통과 맞부닥뜨려 온몸으로 울어야 했던 사람들이 우리 주위엔 많았다. 올해는 특히 인구 10만명이 조금 넘는 충북 제천시 사람들이 그랬다. 뜻하지 않은 화재로 어머니와 아내와 딸을 잃은 사람들은 과연 어떤 크리스마스를 보냈을까? 그들의 고통을 우리가 십 분의 일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노력으로 가 닿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니까. 우리는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구약에 나오는 욥의 질문을, ‘시리어스 맨’에 등장하는 래리의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왜 죄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고통을 내리시나이까? ‘시리어스 맨’에서 신 대신 이 질문을 받은 두 명의 랍비는 엇비슷한 대답을 내놓는다. 한 명의 랍비는 우리에게 오는 모든 고통은 우리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일체유심조’ 식 대답을 내놓았고, 또 다른 랍비는 그 고통에는 아무 의미 없다, 고통은 고통일 뿐, 우리가 해석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지나가기를 바랄 뿐, 이라는 다소 허무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 대답들은 모두 논리적으론 문제 없지만 고통에 빠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모두 제삼자의 입장에서 고통을 해석한 말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실제로 영화에서도 래리는 그 두 명의 랍비의 말을 듣고 더 가혹한 악몽에 시달리고 만다. 래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해석이 아닌 해답이었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끝끝내 찾지 못한다.

화재 참사 이후 많은 정치인들이 제천을 찾았다. 유가족 앞에 무릎을 꿇기도 했고, 또 어떤 국회의원은 직접 화재 현장을 조사하겠다며 통제구역까지 꾸역꾸역 들어가는 무례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위로와 조사들은 지금 유가족들에겐 아무 소용없는 일인지 모른다. 유가족들은 지금 왜 이 형벌 같은 고통이 자신에게 찾아왔는지 알 수 없어서, 그 이유를 알지 못해 더 고통스러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그 앞에서 이해를 운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 공감, 해석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위로, 오직 그것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버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과 똑같은 크기의 고통을 느낀다. 사랑이 없다면 남은 자의 고통도 없다. 보잘것없고, 무지하기만 한 위로의 말을 마지막으로 전할 뿐이다.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셨습니다.

이기호(광주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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