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준동] ‘걸어가는 사람’과 인간 기사의 사진
흔히 조각 하면 프랑스 출신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Le Penseur)’을 많이 떠올린다. 높이 186㎝의 석고상으로 1880년에 완성된 명작이다.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조각한 ‘지옥의 문’ 가운데 시인을 등장시키려는 시도가 벗은 채로 여러 인간의 고뇌를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에 잠긴 남자의 상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처음에 ‘시인’이라 이름 붙여진 이유다.

근대 조각의 시조로 불리는 로댕의 뒤를 이은 조각가를 꼽으라면 단연 알베르토 자코메티(1901∼1966)다.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이자 화가로 20세기 최고의 예술가다.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싼 조각가’ ‘피카소가 시기한 화가’ 같은 수식어가 붙는 현대 미술의 거장이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는 지난주부터 그의 한국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상징적인 행사다. 그가 세상을 뜬 지 51년 만에 발자취를 음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여서 며칠 전 미술관을 찾았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정면에 걸린 대형 문구다. “마침내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한 발을 내디뎌 걷는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리고 그 끝은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러나 나는 걷는다. 그렇다. 나는 걸어야만 한다.” 대표작 ‘걸어가는 사람(Walking Man·1960)’을 빚어내면서 그가 내뱉은 말이다.

이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으로 안으로 향했다. 코너를 돌 때마다 그의 유년기 모습이 담긴 사진과 작품들이 하나씩 등장했다. 작품마다 철사처럼 가느다란 형태로 인체를 구현한 그의 특징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마지막에 설치돼 있는 건 ‘묵상의 방’이다. 66㎡(약 20평) 크기의 공간에는 ‘걸어가는 사람’ 석고 원본 하나만 놓여 있다. 석고 원본은 작가의 호흡과 손길이 밴 작품으로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다. 은은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우뚝 솟은 높이 188㎝ 조각상을 마주하는 순간 왠지 모를 전율을 느낀다. 모든 것을 비워낸 철사처럼 가늘고 긴 형상의 인체 조각으로 압도적인 아우라가 묻어난다. 이 청동 조각은 2010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1억393만 달러(약 1158억원)에 팔렸다. 석고 원본은 그보다 5배 이상의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지난달 경매 사상 최고가인 4억5030만 달러(약 4977억원)에 낙찰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이 작품은 뼈대에 근육과 살을 붙이는 게 아니라 거꾸로 걷어내고 걷어내 군더더기 없는 본연의 인간상을 보여준다. 2차 세계대전이 남긴 폐허, 대량살육의 상흔과 허무를 딛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인간은 전진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아무도 그보다 더 멀리 갈 수 없다”고 자코메티를 평가했다. 그 누구도 자코메티만큼 인간의 내면을 잘 표현해낼 수 없다는 뜻이다. 파블로 피카소(스페인·1881∼1973)가 말년에 자신의 부를 즐기며 점차 상업화되는 사이 자코메티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23㎡(약 7평) 크기의 작업실에 틀어박혀 묵묵히 작업에만 열중했다. 정치적 성향을 드러낸 피카소와 달리 자코메티는 인간과 예술의 본질을 추구했다. 20살 아래인 자코메티는 “피카소가 단순한 장식품을 만들어낼 뿐 인간과 진리 탐구의 필요성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자코메티는 겉모습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순수한 영혼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다. 또 ‘인간은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자문하며 삶의 군더더기를 매일매일 깎아냈다. 욕망과 허영을 마지막까지 비워낸 인간의 모습, 그 자체였다. 물질 만능주의와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서 뚜벅뚜벅 나아가는 ‘걸어가는 사람’은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모습일지 모른다. 나아가 나 자신, 이웃, 그리고 우리 시대를 성찰하게 한다. 그는 말한다. “인간의 삶은 욕심으로 채워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걷어가야 한다”라고.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음미해볼 대목인 듯싶다.

김준동 논설위원jd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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