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지형은] 새해를 기다리며 기사의 사진
진부한 말인데,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시간이다. 이런 질문을 다시금 던져보는 것이 삶을 깨우는 데 좋다. 어디로 가는가? ‘어디로 가는가,/ 마음 말이다/ 이전인가, 나중인가// 마음 가는 쪽으로/ 삶도 간다// 과거로는/ 생각은 가도 실제론 못 간다// 미래로 가는 게 맞는데,/ 그렇다면 거기에 마음도 던져라/ 이전보다 나중이 더 복되리라// 아름다움은 미래에서 현재로 흘러들고/ 과거는 그 마음눈에 비친다// 한 해의 끝자락인데/ 그대의 몸은 어디로 가는가/ 이전인가, 나중인가’

송구영신에서 송구 곧 이제는 보내버려야 할 과거가 훨씬 더 진하다. 올해 살아온 시간이어서 그 흔적이 생생하기도 하다. 새해를 맞이하는 영신은 매년 반복해 온 덕담 성격의 소망 정도일 때가 많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송구영신에 담긴 두 행동을 제대로 해내야 할 텐데 과거에 매여 새해맞이를 놓치는 사람이 많다.

지난 월요일의 크리스마스를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회상은 과거에 매이는 것이 아니다. 크리스마스에는 시간이 겹쳐 있다. 크리스마스에는 위대한 과거의 회상과 더불어 벅찬 현재의 감격이 들어 있다. 크리스마스카드라는 상념에 잠겨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았다.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냅니다’ 하는 제목으로 글을 썼다.

‘교회에 다니지 않던 어릴 적/ 마음에 가득한 크리스마스카드를/ 도화지에 정성껏 그렸습니다// 십대 후반의 사춘기에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몇 날 밤도 새우면서 예배당을 장식하며 성극을 준비하던/ 그 크리스마스카드가 어디엔가 남아 있습니다// 신앙과 세계의 엇박자를 고뇌하던 신학도가/ 칠십 년대 후반과 격동의 팔십 년대를 부둥켜안고/ 처음 크리스마스를 찾아 헤매던 탐사의 흔적이/ 남모르게 고스란히 삶에 퇴적되었습니다// 크리스마스의 임재와 현존이 힘겨운 양떼의 삶에는/ 도대체 어떻게 작동되는지 묻고 또 물으며/ 말씀을 붙잡고 씨름한 목회자의 날들이 아마도/ 나의 크리스마스카드 어디엔가 남았을 겁니다// 사랑하는 이들이여,/ 올해도 시간의 흐름 한가운데로 깊숙이/ 생판 처음인 듯 낯설게 찾아오시는 주님을/ 크리스마스카드에 온몸으로 그려 보냅니다// 이러저러 사연 많은 삶의 이야기 가운데/ 오늘 그대 한 사람을 찾아오시는 크리스마스가/ 찬란한 보석처럼 숨어 있는지 모릅니다’

크리스마스는 과거와 현재를 겹치게 만든다. 미래를 바라보는 설렘이 여기에서 샘처럼 솟는다. 과거가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틀 후면 영원히 가버릴 2017년에 후회할 일이 하나도 없는 사람 누구이겠는가. 또 반대로 곧 우리 앞에 열릴 2018년이 장밋빛이기만 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새해의 불확실성이 전혀 없는 사람은 없다. 내 과거만 그런 게 아니고, 내 미래만 그런 게 아니다. 통속적인 시각으로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크리스마스란 말은 ‘크리스’와 ‘마스’가 붙은 말인데 그리스도를 예배한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과거이며 미래이고, 영원한 현재로 우리 앞에 계시다. 아픈 상흔으로 얼룩진 과거를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게 하고, 순진한 덕담으로 채색된 미래를 믿음의 희망으로 열게 한다. 과거는 힘이 되고 미래는 설렘이 되어 오늘 내가 서 있는 이곳을 감격하게 한다.

‘2018년이 코앞이다. 새로운 시공간을 맞으며 나팔을 불어라. 그대를 위해 이 푸른 별에 처음 닿은 영원의 소풍을 경축하라. 그대는 오늘부터 다시 사는 새사람이다. 2018년은, 2018번째 반복되는 해가 아니다. 그대 사는 별에 와닿은 가없는 영원에 2018번째로 내려앉은 새로움이다.’

다시금 용감하게 삶을 덥석 끌어안을 시간이다. 분석하거나 이해하기 전에 내 앞에 열리는 시공간으로 나를 믿음으로 던질 때다. ‘새해 복 많이 받고, 넉넉하게 누리세요. 그리고 삶의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그 복을 한껏 베풀고 나누세요.’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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