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연하장 기사의 사진
매년 세밑이면 우편 연하장(年賀狀)이 몇 장 날아든다. 나는 보낸 이를 알지만 그들은 나를 잘 모르는 관계가 대부분이다. 장관, 청장 같은 공인인 이들은 내게 연하장을 보냈는지조차 모를 것이다. 십 수 년 전부터 이메일이나 SNS 새해 인사가 대세가 된 마당에 속지 낀 종이 연하장을 받는다는 것은 기쁨이다. 한해를 잘 마무리하고 새해를 희망차게 맞기를 바라는 덕담이 반갑고 고맙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쉽다. 서명마저 육필이 아닌 인쇄체로 박힌 연하장엔 관심이 아니라 의무감이 묻어있다.

정부 한 청장이 발송한 종이 연하장에는 2018년이 무술(巫術)년으로 쓰여 있다. 견공의 영민함과 충성심을 상징하는 무술(戊戌)년이 돌연 무당의 해가 됐다. ‘정’이 아니라 ‘전’으로 내 성(姓)을 바꾸는가 하면 오래 전에 거쳤던 편집국 부장 직책으로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애교로 봐줄 정도지만 부족한 2%가 가뜩이나 미심쩍었던 진정성의 가면을 벗기고 만다. 퇴사한 지 십년도 지난 후배 명의, 심지어 몇 년 전 세상을 뜬 전직 사우 앞으로 온 연하장 겉봉투를 보면 화가 난다. 연하장 비용을 아껴 이웃을 돕는다는 어떤 기업의 사례를 권하고 싶다. 한 기자가 받은 은행장의 이메일 연하장은 제목만 있고 내용은 텅 비었다. 서버접속이 막히거나 PC사양에 따라 이미지가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은행의 반응이었다고 한다. 받는 사람이 아니라 보내는 사람을 위한 연하장이었다.

연하장의 본질은 가고 맞는 해에 대한 인사다. 수고한 한 해를 위로하고 충일된 기대감으로 신년을 함께 맞자는 공감이 주고받는 양측 모두에게 확인돼야 한다. 통과의례처럼 돼버린 연하장은 영 씁쓸하다. ‘다사다난’ ‘후의와 성원’ ‘새로운 태양’ ‘희망’ 같은 상투적 문구도 무성의하게 읽힌다. 차라리 카카오톡 새해인사가 정겹다. 그와 나는 최소한 휴대전화 번호로나마 연결된 사이다. 내가 너무 강퍅해졌나 싶기도 하고.

글=정진영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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