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시사 > 전체기사

가습기살균제 피해 ‘마음의 상처’ 씻어줍니다

세밑, 교계 현장 - 기독교상담심리학회 상담 활동 동행해 보니

가습기살균제 피해 ‘마음의 상처’ 씻어줍니다 기사의 사진
한국기독교상담심리학회 류경숙 상담사(오른쪽)와 박하늘양이 지난 18일 강원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놀이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하늘이는 3세 때까지 사용한 가습기살균제의 영향으로 아직도 심한 천식을 앓고 있다.
지난 18일 강원도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기도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심리상담’이라는 안내문이 붙은 문을 밀고 들어가자 박하늘(10)양과 한국기독교상담심리학회 류경숙 상담사가 막 놀이치료 상담을 시작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하늘이의 모습은 또래 아이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최소한 그의 투병 이력을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하늘이는 자신이 꿈꾸는 가족의 모습을 모래상자 위에 인형과 블록을 배치해 표현했다. 사나운 육식동물은 울타리에 가두고 밖에는 꽃과 온순한 동물들을 세워뒀다. 류 상담사가 그렇게 배치한 이유를 물으며 대화하는 과정에서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아쉬움이 조금씩 새어나왔다.

하늘이는 “엄마가 나더러 만날 아프냐고 할 때마다 ‘간호하기 귀찮다’는 것처럼 들려서 속상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류 상담사가 “어머니가 하늘이 간호하려고 병원 데리고 올 때 고맙다고 말한 적 있니”라고 묻자, 하늘이는 “그걸 생각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하늘이는 놀이치료를 마치면서 어머니에게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하기로 약속했다.

가족 일상 앗아간 가습기살균제

하늘이는 태어나면서부터 3세 때까지 옥시에서 만든 가습기살균제를 썼다. 어머니 신난희(47)씨는 늦게 낳은 딸을 건강하게 키우고 싶은 마음에 하늘이 얼굴 근처에 가습기를 바짝 붙여놓고 사용했다. 세 살 이후 기침이 점차 심해졌다. 단순 감기가 아니었다. 신씨는 “딸이 마치 창자가 끊어지는 것처럼 격렬하게 기침했다”고 했다. 환절기만 되면 가슴에서 그렁거리는 소리가 났다. 병원에 가니 의사는 천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얘가 이렇게 될 때까지 부모란 사람이 뭘 했냐”고 신씨에게 호통을 쳤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폐결핵으로 입원했다. 면역력이 약해진 탓이었다. 신씨는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딸이 독방에 격리된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이후로도 조퇴나 결석이 잦아 이틀에 한 번꼴로 학교수업에 빠져야 했다. 원인 모를 폐질환을 앓고 있으면서도 가습기살균제 때문일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딸이 “엄마, 나는 왜 아프게 태어난 거야”라고 물을 때마다 신씨 마음은 찢어졌다.

모녀에게는 마음의 병도 찾아왔다. 하늘이의 결석이 잦아져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또래들은 멀쩡하게 뛰어다니는데 자신만 유독 몸이 안 좋은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신씨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 전에는 차도가 없어 좌절했다. 알고 난 다음에는 죄책감과 분노 때문에 심한 우울감에 시달렸다. 하늘이가 자주 결석하면서 또래들의 학습 수준을 따라가지 못할까 봐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과정에서 갈등도 점차 커져갔다.

기독교 심리상담 통해 안정 찾아가

상담을 시작한 이후 신씨 모녀는 조금씩 안정되고 있다. 신씨는 이제 “딸이 놀이치료를 받으면서 심정이 어떤지 알 수 있게 됐고, 덩달아 나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고 말했다.

신씨는 지난해 환경부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해달라는 신청서를 제출하고 판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환경부 사업 과제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심리상담 사업을 알게 됐다. 한국기독교상담심리학회에서 12세 이하 아동에게 놀이치료를 통해 상담을 한다는 것을 알고 도움을 청했다. 현재 하늘이를 포함해 가습기살균제 피해아동 40여명이 학회 도움으로 치료를 받는 중이다.

한국기독교상담심리학회장을 맡고 있는 권수영 연세대 교수는 “이번 심리상담 사업은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입고도 사각지대에 있던 사람들을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돕는다는 의미가 있다”며 “심리학적 지식에 더해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상담사들이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가고 있다”고 밝혔다.

원주=글·사진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