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노트] 나에게 주는 상 기사의 사진
쥘 브르통 ‘이삭 줍고 돌아오는 여인들’
며칠 전 이런 질문을 받았다. “올해를 마감하면서 스스로에게 상을 준다면, 어떤 이름을 달아서 주시겠어요?” 상이란 언제나 남이 정해서 줬으니까 뭐라고 답해야 할지 멈칫거릴 수밖에 없었다. 일 년 동안 큰돈을 번 것도 아니고, 명성을 쌓은 것도 아니고, 실력이 일취월장한 것 같지도 않으니 도대체 나에게 어떤 상을 줘야 할지 난감했다.

하지만 꼭 대단한 걸 이뤄야 잘 산 건 아니지 않은가. 겉으로 쉬이 드러낼 수 없는 고난을 겪었고, 고함치며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두 발을 땅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버텼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삶을 집어 삼킬 듯 덤벼들었지만 원고 마감 한 번 어기지 않았고, 나를 찾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마다않고 달려가 강의도 했고, 세상 사람들의 사연에 귀와 가슴을 내어주며 살았다.

마음속에서 태풍이 몰아치고 시뿌연 안개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일상을 꿋꿋이 지켜낸 것. 나는 이게 제일 자랑스럽다. ‘그래, 내가 나에게 주는 상 이름은 <잘 견뎠다 상>이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향해 돌진해서 싸워 보는 것도 좋지만, 누가 뭐라 해도 묵묵히 버티면서 시간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는 게 효과적일 때가 많다. 문제를 해결하고 스트레스를 풀고 부정적 감정을 날려 버려야 한다고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교과서에 나온 대로 상담을 받고 자기 관리 잘하면 마음이 홀가분해져야겠지만, 그저 견뎌내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가 더 많다. 그렇게 파도가 하나 둘 지나면 나란 사람도 어느새 이전보다 조금 더 단단한 사람으로 변해 있기 마련이다. 성숙이란 것도 이렇게 시간을 견뎌내며 얻어지는 법이다.

2017년을 돌아보며 ‘제대로 이룬 것 없이 한 해가 다 갔어’라고 한숨 쉬고 있다면…. 제발 그러지 마시라. 당신도 나처럼 <잘 견뎠다 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한 해 동안 대단한 걸 이루지 않았더라도, 나란 사람이 대단한 무엇이 되지 못 했더라도 괜찮다. 견디고 버티며 일 년을 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대단한 일을 해낸 것이니까.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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