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새해, 경계에 꽃이 핀다 기사의 사진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다고 합니다. 함민복 시인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는 시에서 비무장지대(DMZ) 해안가 철책을 꽃철책이라고 말합니다. 그 꽃철책이 시들면 경계가 무너지리라는 소망을 담았습니다.

우리는 어느덧 신·구 해의 경계에 서 있습니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간다’더니 딱 그러합니다. “땅은 영원히 있고 말씀도 영원히 있지만 나약한 우리는 보아도 족함이 없고 들어도 가득차지 아니합니다.”(전 1:5∼8)

이 땅의 크리스천은 올 한 해 세상과의 경계에 서서 종교개혁 500주년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참 많이 기도했습니다. 예배와 봉사로 우리 안의 우상을 무너뜨리고자 애썼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상징성 강한 한 교회의 세습 문제로 허무한 마무리를 하고 말았습니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에 원당교회라는 시골교회가 있습니다. 임진강 너머 DMZ 철책 아래입니다. 면 단위라고 하지만 380여 가구에 지나지 않고 교회도 하나뿐입니다. 수복 후를 생각해 리(里) 단위를 면으로 지정해 놓은 곳입니다. 이곳 원당교회 김광철 목사 부부는 올해도 철책 경계의 담장 위의 공중섬이 되어 말씀의 꽃을 피운 한 해를 보냈습니다. 2016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으로부터 다문화사역과 군선교 등으로 ‘참좋은교회상’을 수상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 교회는 지난 24일 밤 장남면 380여 가구 모두를 대상으로 소위 ‘새벽송’을 돌았습니다. 31년째입니다. 아기 예수 탄생의 기쁨을 함께 나눈 거지요. 이날 60여명의 교인을 대신해 14명이 칼바람을 맞으며 눈길을 밟았습니다. 교회는 정성스럽게 준비한 양말 두 켤레씩을 돌렸습니다. 주민은 믿건 안 믿건 답례로 귤 사탕 라면 등을 내놓았습니다.

김 목사는 서울 용산 해방교회 청년이었습니다. 청년시절 봉사활동을 왔다가 부름에 따라야 할 것 같아 31년 전 부임했다고 합니다. 갓 결혼한 서울내기 부부가 교인 10명 남짓한 민통선 내 이 교회에 짐을 부리자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마을 어른 한 분이 이러더랍니다. “언제 이사 가세요.” 막 부임했는데 말이죠. 그 어르신은 예수 영접하고 지난해 소천했답니다. 원당교회는 1년마다 목회자가 바뀌는 시골교회였습니다. 애들 교육이 힘들었기 때문이죠. 그래서일까요. 하나님께서 부부에게 자녀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30여년간 부부의 사택에선 조손가정 아이들이 성장했습니다. 청소년들은 부부의 사랑 속에 목회자와 변호사 등이 됐습니다. 생각해보면 30대 초반 전도사 부부가 세상을 알면 얼마나 알았겠습니까. 되레 마을이 사랑으로 안았을 겁니다.

마을에선 1990년대까지 대동굿이 열렸습니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큰무당이 교인에게도 곗돈 걷듯 굿비를 받았습니다. 큰무당과 정한수 기도 효험을 보이는 할머니가 쌍벽을 이뤘답니다. 대동굿 날이면 큰무당이 김 목사에게 “계시면 굿이 안 됩니다”고 했답니다. 선량한 부부의 신앙을 인정한 무속인이었죠. ‘쌍벽’이던 두 분, 성도가 되어 교회를 섬겼답니다.

사택은 물청자리였습니다. 뱀이 많아 새댁 사모가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부부는 전도를 위해 마을 농사를 도왔습니다. 뭐 쭉정이 뽑으랬더니 알갱이 뽑곤 했지만요. 훗날 직접 농사지으며 교회를 자립시켰죠. 부부는 임진강 대홍수를 두 번이나 극복하며 주민과 함께 경계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원당교회는 지금 ‘아름다운 전원교회’입니다. 현무암으로 단장한 야외 예배 정원이 참 빼어납니다. 헌신과 겸손이 마을에 ‘우리 교회’가 된 겁니다. 김 목사는 또 군선교 31년째이기도 합니다. 숱한 아들들이 있습니다. 김 목사는 곧 빈손으로 은퇴합니다. 교회는 하나님 재산이기 때문이죠. 그가 송구영신 예배를 앞두고 한국교회가 새길 한마디를 합니다.

“목회자의 삶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면 전도가 될 수 없어요. 설교가 다가 아니죠. 목회자는 경계의 안쪽으로 가고자 해선 안 됩니다. 늘 세상과의 경계에 서서 말씀과 삶의 모습이 같다는 걸 보여줘야 합니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종교국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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