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인 “남북관계 풀리면 한·미동맹 과도한 의존 불필요” 기사의 사진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가 지난 27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 특보는 새해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해 “서로 시기가 맞고 얻는 게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현실적 제약이 상당히 많다”고 말했다. 최현규 기자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어려운 남북관계 극복이 ‘文정부’ 책무
北을 악마화한다고 해법 생기지 않아
北 도발 자제하고 한·미 훈련 연기하면
국면 전환 계기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
주한미군 조정, 對北 협상 카드로 가능
김정은, 성과 중시하는 예측 가능한 인물
北이 평창올림픽 판을 깨지는 않을 것
남북 정상회담, 현실적 제약 상당히 많아

문정인(66)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남북관계만 개선되면 우리가 한·미동맹에 과도하게 의존할 필요가 없다”며 “한·중 관계에서도 외교적 공간이 훨씬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문 특보는 “지금 남북관계가 어려운 건 북한 때문이지만 이를 극복하고 개선하는 것이 문재인정부에 주어진 책무”라며 “북한을 악마화한다고 해법이 생기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대담=남도영 정치부장

문 특보는 지난 27일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특보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새해 한반도 전망을 풀어냈다. 그는 “여러 정보를 종합하면 북한이 ‘올림픽 판은 깨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읽힌다”며 북한이 도발을 자제하고 한·미가 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하면 ‘자발적 쌍중단(雙中斷)’이 이뤄져 국면 전환의 계기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했다. 문 특보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 대해 “성과를 중시하고 목표에 대한 집착도가 상당히 강한 예측 가능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새해 북핵 문제에 변화가 있을까.

“세 갈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북한이 ‘핵은 완성됐으니 경제에 집중하겠다’며 대화 공세로 나왔을 때 한국과 미국이 이에 응해 협상에 들어가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상황이다. 두 번째, 북한의 대화 공세를 한·미가 비핵화 전제 등을 이유로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면 2018년도 계속 우울한 한 해가 된다. 세 번째는 북한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결의(2397호)에 대응해 도발하는 시나리오다. 그렇게 되면 미국에서 나오는 3월 말 군사행동설 등과 연계돼 상황이 복잡해진다.”

-세 갈래 중 어떤 쪽으로 간다고 보는가.

“국면 전환으로 가도록 정책적 노력을 다해야 된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나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자리에 있는 동안 뭔가 돌파구를 만들려고 하니 지켜보자.”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이 참석할까.

“북쪽에서 나오는 여러 메시지를 봤을 때 선수단 파견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올림픽에 참가할 선수가 얼마 없다. 김정은 집권 이후 남쪽에 대표단을 보내는데, 선수단 수도 적고 성적도 못 낸다면 정치적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의 장애인선수단은 기량이 좋은 것으로 알고 있어 평창 패럴림픽에 참가할 가능성이 있다. 여러 정보를 종합하면 북한이 ‘올림픽 판은 깨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한국 정부도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를 미국에 제안했고, 미국이 검토 중인데, 북한이 판을 깨지 않으면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은 무난히 치러질 것이다. 그걸 계기로 어떻게 국면 전환을 만들어내는가가 문재인정부의 큰 과제다.”

-평창이 왜 중요한가.

“평창을 평화올림픽으로 만든다는 건 두 가지 의미다. 하나는 군사적 충돌 없이 무난하게 치르는 협의의 평화올림픽, 또 하나는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북·미 대화도 이뤄지고 한반도에 평화의 기운이 싹트는 광의의 평화올림픽을 만드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자를 원하는 것 아닌가 싶다.”

-새해 대북 특사 얘기가 많다.

“글쎄, 북한이 안 받을 것 같은데. 내가 알기론 남북 간 공식·비공식 접촉이 없고, 북한도 우리의 특사 파견에 긍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다. 우리가 특사를 파견해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이를 이용해 북·미 관계도 개선시켜 북핵 문제 해결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던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었다. 지금은 조금 실기(失期)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해 5월 취임과 더불어 일찍 보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 실기한 측면이 있다.”

-취임 초반에 특사 논의가 실제로 있었나.

“있긴 있었는데, 그때는 남북관계를 좀 낙관적으로 보는 분위기였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최문순 강원지사 쪽 움직임도 있었고. 문 대통령도 그런 걸 활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 아닌가 생각한다.”

-북한 핵 포기를 전제하지 않더라도 대화하자는 입장은 여전한가.

“그건 나 혼자 생각이 아니고 한국 정부 입장이 그렇다. 미국도 사실 그럴 거다. 틸러슨 장관이 얘기한 게 그거다. 현실적으로 쌍중단이 어려운 이유는 불법적인 것(북한의 핵·미사일 도발)과 합법적인 것(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바꿀 수 없다는 게 정부의 기본 시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알아서 핵·미사일 시험발사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한국 정부도 미국과 협의해 2∼4월 연합훈련을 자발적으로 연기하면, 교환이 아닌 양측의 자발적 관계에서 쌍중단이 이뤄질 수 있다. 그럼 신뢰가 생긴다.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대화를 시작해야 되는 거 아닌가.”

-대북 로드맵이 있나.

“우리가 기존에 가졌던 대안은 6자 회담 당시 9·19 공동성명의 틀 안에서 나왔던 것들이다. 지금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다 가졌기 때문에 그것에 걸맞은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결국은 북한에 줘야할 게 더 많아진 거 아닌가.

“모든 옵션은 ‘온 더 테이블’이다. 군사행동만 옵션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북·미 평화협정부터 시작해 심지어 주한미군 조정문제까지도 협상의 카드로 내놓을 수 있다. 유연성 있게 대북 협상을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급변사태 가능한가.

“급변사태라는 게 김정은의 유고 상황을 얘기하는 건데, 2011년 김정일 유고에서 보지 않았는가. 6년 지났는데 북한이 건재하다. 지금 상태에서 급변사태라는 게 쉽지 않을 거다. 우리가 급변사태를 준비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급변사태를 전제로 한 대북전략 구축, 대북 대화, 대북 협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의 선제타격은 현실화될 수 있는가.

“선제타격도 쉽지 않다. 선제타격하려면 정치적·군사적 목표를 달성해야 할 거 아닌가. 북한의 군사시설, 핵시설, 핵물질, 핵탄두를 외과적 타격을 통해 없앤다는 건데 가능할까. 김정은을 공격해 북한 지도부를 궤멸시킨다는 게 가능할까. 오히려 선제타격해서 목표는 달성하지 못하고 한반도에 군사적 확전만 가져올 수 있다. 그건 대한민국 전체가 원하지 않는 일이다. 미국이 어떤 행동을 하는 건 좋은데 행동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그건 따질 필요가 있는 거다.”

-대미외교, 대중외교 모두 어려운 상황이다. 균형외교의 한계 아닌가.

“한계가 아니다. 균형외교는 우리의 운명적 선택이다.”

-어떻게 해야 균형외교가 가능한가.

“어려울 거 같지만 간단하다. 남북관계만 개선되면 그런 딜레마에 안 빠진다.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우리가 한·미동맹에 과도하게 의존할 필요가 없잖은가. 우리가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으면 중국과 각을 세울 이유도 없다. 한·중 관계가 개선되며 중국이 북한을 다루는 것도 훨씬 쉬워진다. 그런 상황이면 북한도 미국과 얼마든지 대화할 수 있다. 남북이 잘되면 한·미 한·중 북·미 북·중 관계의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럼 균형자니 뭐니 할 필요도 없다.”

-남북관계가 풀려야 대중·대미 레버리지도 생긴다는 뜻인가.

“우리가 동맹하는 게 북한의 위협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동맹에 연연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동맹이 없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지금처럼 과도한 의존은 줄어들 수 있다는 거다. 한·중 관계를 개선하는데도 외교적 공간이 훨씬 커진다.”

-하지만 남북관계가 어려운 건 북한 때문 아닌가.

“1차적으로 북한 때문이다. 그걸 극복해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게 우리 정부에 주어진 책무다. 북한을 악마화한다고 해법이 나오는 게 아니다. 카타르시스밖에 없다. 보수 쪽에서 ‘우리는 미국과 영원히 같이 가야 된다’고 하는데, 그 시각에 대해서도 나는 회의적이다.”

-김정은은 어떤 지도자인가. 예측불가라는 지적이 있는데.

“아니다. 상당히 예측 가능하다고 본다. 2015년 신년사가 대표적이다.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포함해 대남 대화 공세로 나왔다. 그해 목함 지뢰 사건이 있었지만 북에서 김양건(노동당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 황병서(군 총정치국장)가, 남에서 김관진(국가안보실장) 홍용표(통일부 장관)가 8·25 합의를 했다. 그게 지속됐다면 판이 완전 달라졌을 거다. 그런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10월에 미국에 가서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북한 규탄 성명을 별도로 채택하고, 11월 남북 차관급회의에서 북한의 금강산 재개 제안을 ‘노’ 해버렸다. 12월 말에 김양건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그 다음해 1월 초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 시퀀스(sequence·일련의 연속된 흐름)가 보이지 않나. 그러다보니 김정은 밑에 대화파가 다 사라졌다. 김양건은 죽었고, 원동연(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은 2선으로 물러났다. 지금 통일전선부장이 김영철인데 강경파다. 박근혜정부 때 조금이라도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놓았다면 지금 이 꼴 안 났다.

김정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성과다. 김정은은 누구의 제안이든 흔쾌히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성과를 못 내면 책임을 져야 한다. 김정일 때는 단독 결정이 많았는데 김정은은 오히려 참모들과 협의를 한다고 한다. 목표에 대한 집착도가 상당히 강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제재 국면이 2∼3년 이어지면 북한은 무너진다는 관측도 있다.

“그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무너지면 so what(그래서 뭐)? 북한이 무너지는 게 우리에게 꼭 축복이 아니다. 우리는 북한이 붕괴되면 (통일에) 좋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도 가능하다. 북에 급변사태 발생하면 우리가 군사적 개입을 통해 북한을 흡수통일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 역시 국제법적으로 정당화되지도 않을 뿐더러 북한 내부의 저항, 중국의 군사개입 가능성 등 제약변수가 많다. 그 과정에서 전쟁 가능성도 커진다. 중동을 봐라. 일단 전쟁이라는 괴물이 시작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남북 정상회담은 임기 전반기에 해야 하지 않나.

“당연히 해야 된다. 대통령도 그래서 베를린 구상을 서둘러 발표한 것 아닌가.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남북 간 비밀접촉은 국가정보원이 해야 하는데, 지난 9년 동안 국정원은 북한과의 대화보다는 대북 침투 와해 공작에 전념했다. 그러다보니 북한과의 신뢰는 실종됐고 현 단계에서 역할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 아닌가 한다.”

-2019년이 정상회담 마지노선 아닌가.

“정상회담은 서로가 맞고 얻는 게 있어야 한다. 국내 정치적 목적으로 섣불리 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북도 마찬가지다. 유엔 미국 할 것 없이 다양한 형태의 대북 제재를 가하고 있는데 이런 구도하에서 뭘 얼마나 얻을 수 있겠는가. 현실적 제약이 상당히 많다.”

-한·일 위안부 합의 다시 할 수 있나.

“재협상하겠다고 한들 일본이 응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결국 역사 문제는 시간을 통해 치유해 나가고, 전략적 이해관계에 있어선 한·일 간 협의를 돈독히 해나가는 투트랙 접근이 필요하다.”

-일본이 동의할까.

“일본은 안 받으려고 한다. 그들은 ‘위안부는 끝났고 원트랙만 하자’는 거다. 재협상과 일방 파기를 넘어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文 특보는

국제정치학자다. 참여정부 때 대통령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을 맡았고,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짰다. 1차(2000년)와 2차(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했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정치학 석·박사를 했다. 비상근인 특보직 외에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글로벌아시아 편집인을 맡고 있다.

정리=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사진=최현규 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