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지방] 타이거 운동화 기사의 사진
서울 신촌로터리 근처 이한열기념관에는 270㎜ 흰색 타이거 운동화 한 짝이 전시돼 있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이한열씨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쓰러질 때 신고 있던 신발이다. 개봉 중인 영화 ‘1987’은 이 운동화에 사연을 만들어 넣었다. 젊은 날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30년 전의 역사를 응축해 타이거 운동화 한 짝에 의미를 부여한 장준환 감독에게 나도 깊이 동의한다.

영화에서 학생운동을 탄압하는 인물로 경찰청 치안감 박처원 대공처장이 등장한다. 실제 박종철 치사 사건을 은폐·조작한 책임자다. 북한에서 태어나 지주계급이란 이유로 가족을 잃고 홀로 월남했다. 영화에서 박 처장은 짙은 북한 사투리로 말한다. “지옥이 뭔디 아네? 가족이 눈앞에서 죽창에 찔려 죽어가도 아무것도 못 하고 가만히 숨어 있어야 하는 것, 그거이 지옥이야.”

87년 거리에 나섰던 대학생과 시민들의 심정도 사실은 비슷했다. 진실을 요구하는 시민의 입을 경찰의 몽둥이로 틀어막는 나라, 대학생이 경찰에게 물고문 받다 죽어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보도하는 나라는 박 처장이 북한에서 경험한 것과 똑같은 의미에서 지옥이었을 것이다. 박 처장은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빨갱이 사냥에 나섰다. 87년 그는 전쟁 중이었다. 물고문은 전투였고, 거짓말과 공작은 승리를 위한 전술일 뿐이었다.

대한민국 시민은 다른 선택을 했다.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깨를 걸고 대통령 직선제와 민주의의를 요구했다. 같이 지옥을 경험했지만 다른 선택을 했기에 박 처장과 대한민국 시민은 다른 운명을 걸었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말한다. 그때 기자들은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그렇게 애썼는데, 지금 기레기(기자+쓰레기)들은 왜 이 모양이냐. 영화 속 교회는 시민을 지키고 정의를 외쳤는데 지금 교회는 왜 저러느냐. 아마 “30년 전 젊은이들은 민주주의와 나라를 위해 싸웠는데 지금 대학생들은 저 모양 저 꼴”이라거나 “젊은 날 정의를 위해 싸웠던 이들이 결국 부동산 값을 올리고 학력 인플레에 매달려 헬조선을 만들지 않았느냐”고 화를 낸 이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취재하다 현지 경호원들에게 구타당한 사진기자를 향해 “맞을 만한 짓을 했겠지”라고 비난하는 댓글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왜 그랬을까. 아마 그 댓글을 쓴 사람은 전쟁 중이었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니 조금은 이해가 됐다.

“온 국민이 촛불을 들어 만들어낸 새 정부 새 대통령을 반드시 지키겠다.” “꼭 성공한 정부로 만들기 위해 기꺼이 자발적인 댓글부대가 되겠다.” 이렇게 선언한 이들이 많다. 전투 중인 병사는 적이 보이면 총을 쏠 뿐이다. 적을 인간으로 보아선 안 된다.

1944년 알베르 카뮈도 그랬다. 나치에서 해방된 프랑스에서 카뮈는 부역자 숙청을 요구했다. “숙청은 그릇된 저항을 유발하는 모든 것의 청산, 우리를 질식케 했던 구조의 정리다. 모든 적대행위나 적과의 내통에는 전쟁 규칙과 군법을 적용해야 한다.”

국정원 댓글요원들이 그랬듯 적폐청산의 전투에 나선 프랑스 시민들은 쉽게 증오에 빨려들어갔다. 부역 문학인 명단은 시간이 갈수록 길어졌다. 레지스탕스에 비판적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카뮈의 동료 앙리 베로와 촉망받던 젊은 작가 로베르 브리지야크가 사형을 선고받았다. 레지스탕스 작가들을 보호했던 라 로셀까지 시민의 손가락질 속에 자살한 날 저녁, 카뮈는 프랑스의 적폐청산은 실패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거짓과 증오 속에 살아왔다. 진정 우리가 물리쳐야 할 것은 증오다. 이 중독된 마음을 치유해야 한다.”

영화에서 이한열의 마지막 시선이 머문 곳은 최루탄을 쏜 전투경찰이 아니라 벗겨진 타이거 운동화였다. 그는 살아서 사랑을 해보길 간절히 원하지 않았을까. 새해 첫날이다. 작심삼일이 될지라도 결심해본다. 올해는 증오보단 사랑을 말해보리라.

김지방 사회부 차장 fatty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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