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는 시대다] 행복이 죽다… 문정동 S씨의 구슬픈 사연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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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송파구 문정동의 밀집형 아파트에 거주하는 S씨는 실직 가장이다. S씨의 하루 일과는 단출하다. 양복을 챙겨 입고 헌책방으로 출근, 연애 소설 코너에 쪼그려 앉아 책을 읽다가 주인의 눈총이 심해지면 싸구려 한 권 값만 치르고 탑골공원으로 옮겨가 마저 읽는다. 오는 길에는 맡겨 놓은 갓난아기를 데려온다. 때때로 장을 보러 나가고 집에서는 연속극을 시청한다.

집안의 경제는 아내 C씨가 전부 책임진다. 빈둥대기만 하는 것 같은 남편 때문에 아내는 속이 터진다. 반면 C씨의 숨겨진 고민은 따로 있다. 그녀는 지금 다른 남자와 깊은 사랑에 빠져 있다. C씨는 퇴근 뒤 남자의 오피스텔에 들러 격렬한 정사를 나누고 늦은 시간에 귀가하곤 한다. S씨는 이런 아내의 관계를 뒤늦게 눈치챈다. 그는 분노와 혼란에 휩싸여 고민한다. 그러다 한 가지 빌미를 맞아 그만 C씨를 살해한다. ‘문정동 실직 가장 아내 살해사건’의 전말이다.

1999년에 있었던 한 치정극인데, 실제 사건은 아니고, 영화 ‘해피엔드’의 주인공인 서민기(최민식)와 최보라(전도연)의 이야기다. 감독이 애초 이 영화의 단상을 얻은 것은 1995년에 있었던 ‘치과의사 모녀 살해 사건’이었지만, 영화로 만들어지며 완전히 다른 별개의 내용으로 변형됐다.

영화 속 서민기와 같은 ‘공원 가장’들의 출현은 당시에 흔했다. 이혼율도 급증하던 때였다. 공원 가장들의 출현과 치솟은 이혼율 뒤에는 IMF 외환위기라는 경제적 국난이 버티고 있었다. 이 가상적 치정극이 불러온 공감의 배경도 그러했을 것이다. ‘해피엔드’는 이른바 IMF 시대의 치정극이라는 면모를 강조한다.

일례로 서민기의 직업은 은행원이었다. 실제로 은행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합병되던 그때에 그의 불운도 닥친 것으로 영화는 가정했을 것이다. 반면에 최보라의 남자인 김일범(주진모)은 서민기와 대비된다. 김일범은 준수한 용모의 미혼남이며 당시의 비교적 최신 직종 종사자라 할 만한 웹디자이너다. 영화는 직업과 문화와 취향 등등의 면에서 두 인물의 차이를 부각시킨다. 서민기의 모든 것은 투박하게 김일범의 모든 것은 세련되게 그려진다.

최보라는 양면을 모두 지녔다. 그녀의 직업은 소규모 유아 영어 학원 원장이다. 적잖이 반론에 부딪쳤지만 어쨌든 사회적 첨단의 무엇인양 일각에서 영어 공용화론이 제기되던 때였으므로 최보라도 그 첨단성에 젖어든 일원으로 짐작된다. 그녀는 학원을 찾은 학부모들에게 “써클(circle)”이 아니라 “쓰클”이라고 읽어야 하는 세련된 발음 차이를 강조하는 한편, “인터넷은 다들 하시죠?”라고 우세한 척 질문하며 자신의 직업적 유능함과 문화적 첨단성을 상대에게 주지시키려 한다. 하지만 집안에서의 최보라는 다르다. 무심함과 피곤함과 때로는 신경질을 보이는 투박한 가장의 일반화된 모습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해피엔드’는 낡고 권태로운 집안에서의 삶(최보라/서민기)과 세련되고 활기찬 바깥에서의 삶(최보라/김일범)이라는, 영화 자신이 세운 이분법을 고수한다. 이때 영화가 관객에게 주시하도록 유도하는 것은 그 안과 밖의 경계가 무너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집 안 그러니까 공고한 이 가정의 자리를 침입해 오는 어떤 것들로 인해 긴장감이 고조되도록 영화는 설정한다.

이 설정과 관련하여 몇 가지가 흥미로워진다. 언론인 홍세화는 1999년의 한국에 관하여 이렇게 썼다. “한국에선 개나 소나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고 한 선배가 말했다. 한국에 도착한 날 나도 휴대전화를 갖게 되었다. 한국을 떠나면서 반환했다. 나도 한국에선 개나 소가 되었던 셈이다”(계간 ‘창작과 비평’, 1999년 가을 호). 초등학교 졸업 선물로 휴대폰을 선물할 정도로 이미 보급률이 높았던 때다.

하지만 ‘해피엔드’는 당대 휴대폰의 보급률을 의도적으로 낮춰서 묘사한다. 영화 속에서 휴대폰 사용자는 김일범뿐이다. 의아한 건 누구보다 필요하고 선호할 것 같은 최보라가 휴대폰을 사용하는 장면이 없다는 점이다. 김일범은 최보라가 집에 머무를 때 그녀의 집 전화로 연락하는 수밖에는 없다. 그 과정에서 남편인 서민기가 받고 김일범이 끊기를 반복하면서 위태로움이 쌓여간다. 집안에 거듭 울리는 전화벨 소리 그리고 침묵 속에 끊는 수화기 너머의 상대란 이 영화에서 일종의 가정에의 침입인데, 실은 이것은 휴대폰의 보급 이전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서사적 긴장 고조화의 한 기술이었다.

더 흥미로운 장면도 있다. 하지만 그 장면을 말하기 위해서는 이런 장면들을 먼저 말해야 한다. 영화의 도입부. 김일범의 오피스텔 복도를 최보라가 걷고 있다. 그의 집(방)으로 가는 중이다. 육감적인 한 여인이 김일범의 집 쪽에서 나와 최보라를 지나쳐 간다. 최보라가 그녀를 의식한다. 영화의 중반. 이번에는 같은 여인이 김일범의 집 쪽으로 들어가는 것 같다. 뒤따라가며 복도에서 그걸 목격한 최보라는 김일범에게 자신 외에 다른 여인이 있는 것이라고 확신하고는 현관문을 두드리며 화를 내고 욕설을 퍼붓는다. 그런데 그 여인이 김일범의 옆집에서 나와 왜 이렇게 시끄럽게 하냐는 눈짓으로 최보라를 쳐다본다. 그녀는 김일범의 이웃일 뿐이다.

영화의 전체 맥락과 무관하게 등장하는 이 해프닝은 사실상 ‘해피엔드’에서 가장 중대한 다음과 같은 장면과 연관되어 있다. 김일범이 급작스럽게 최보라(와 서민기)의 집을 찾아오고 서민기가 두 사람을 복도에서 우연히 목격하게 되는 장면이다. 외출했다가 들를 일이 있어 돌아왔던 서민기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그는 안쪽에서 벌어진 무언가를 목격하고는 망연자실하여 복도에 서 있다가 조용히 문을 닫고 돌아선다. 그의 살인에 동기가 마련되는 결정적인 순간이다.

서민기는 최보라와 김일범의 관계를 이 장면 이전에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는 결국 그들의 관계를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보았기’ 때문에 살해를 결심하게 된 것이다. 영화가 관객에게 보여주진 않지만, 서민기가 그 자리에서 보았던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최보라가 김일범의 집에서 보기를 두려워했던 것을 서민기가 자신(과 최보라)의 집에서 보고 만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그건 저들의 따뜻한 포옹, 어쩌면 깊은 입맞춤, 아니 뜨거운 정사였는지도 모른다.

‘해피엔드’는 도입부에 격렬한 정사 장면을 배치한다. 이 장면은 최보라가 복도를 지나 김일범의 집에 들어간 첫 장면 직후에 마치 관객을 기습하려는 듯 곧장 등장한다. 시간이 지나 다시 보아도 수위가 높은 이 장면은 개봉 당시에도 많은 얘깃거리가 되어 떠돌았다. 유명배우들의 과감한 노출 정도가 주로 당시의 화제였지만, 사실 이 장면의 핵심은 다른 데 있다.

관객인 우리는 서민기가 본 것을 영화 속에서 정말 보지 못했을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서민기보다 앞서 본 것 같다. 왜 이 영화는 저토록 강렬한 정사 장면으로 시작하는가, 하고 물을 때 우린 같은 질문을 이렇게 반복하게 된다. 왜 이 영화는 서민기의 최보라 살해 장면을 저토록 잔인하게 자세히 묘사하는가. 답은 이미 질문의 형식으로 제출된 것 같다. 두 장면에 밴 묘사의 ‘적나라함’에는 깊은 관련이 있다. 서민기의 살인 행각의 적나라함은 최보라-김일범의 정사의 적나라함과 겹쳐진다. 저들의 정사가 격렬했던 것일수록 그의 살인 행각은 잔혹하다.

최보라는 왜 끝내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무시 못 할 반론은 당대에도 제기되었다. 다만 이 장면이 외도에 대한 형벌의 장면으로 의도된 것 같진 않다. 그러기에 영화는 최보라와 김일범의 사랑을 최대한 정성스럽고 애틋하게 그린다. 그러니 이 장면은 최보라가 죄의 대가를 치루는 장면이 아니라 죽는 사람과 죽이는 사람 모두 파멸하고 마는 장면이다. 형벌의 장면이 아니라 파국의 장면이다.

살인 행각 이후 영화의 극적 처리는 다소 허술하다. 하지만 남겨진 서민기에 관해서는 감정적 세심함이 발휘된다. 집에서 갓난아기와 잠들었다가 깨어난 그의 뒷모습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그의 뒷모습엔 계획에 성공한 살인자의 안도감이 아니라 눈을 떠보니 살인자가 되어 있으므로 느껴지는, 피로 얼룩진 슬픔이 걸려 있다. 어쩌면 당대에 영화와 드라마 속에서 그려진 수많은 실직 가장의 상상적 초상 중 가장 참혹한 것이었다고 말해도 되겠다. ‘해피엔드’는 희미하던 행복이 그나마도 완벽하게 파국을 맞아 끝나게 되는 해피 엔드, 그러니까 행복이 끝나는, 행복이 죽는 영화다.

■정지우 감독은… 상업영화 안에서 자기의 길을 모색

'해피엔드'로 입문하기 전 이미 한국영화계의 주목할 만한 신인감독이었고 당시 활발한 활동을 했던 독립영화제작소 '청년'을 이끌던 주요 회원 중 한 명이었다. 1990년대 초중반은 장편영화뿐 아니라 단편영화에 대한 관심도 큰 시기였다. 국제단편영화제도 큰 호응 속에 치러질 정도였다. 정지우 감독은 단편 '사로'(1994)로 주목을 모은 뒤 '생강'(1996)에서 그 재능을 여실히 확인시킨다. '생강'은 3회 서울단편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다. 1990년대 초를 살아가는 어느 노동운동가의 아내, 그녀의 건조하고 힘겨운 일상을 세심하게 그려낸 리얼리즘 영화의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해피엔드'로 장편영화에 데뷔했을 당시에는 '생강'을 만든 감독이 치정극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지만 영화는 결국 그 해의 수작으로 여러 곳에서 언급되었다. 감독 스스로는 '해피엔드'에 관하여 말하던 중, 전반부는 최보라의 감정을 따라 후반부는 서민기의 감정을 따라 보기를 원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서민기의 살인 행각 장면이 상상인 것으로 밝혀지는 시나리오 버전도 있었다고 한다. '해피엔드' 이후 수작 '사랑니'(2005)를 연출하여 전문가들에게서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에는 '모던보이'(2008) '은교'(2012)를 거치며 상업영화 안에서 자기의 길을 가는 모델을 모색했으며, '4등'(2015)과 같은 과소평가 받은 역작을 만들기도 했다. 최근에는 '해피엔드'의 주연배우 최민식과 18년 만에 함께한 '침묵'(2017)이라는 영화를 내놓았다.

<정한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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