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쇼트트랙 ‘실격 3관왕’ 크리스티 “또 실격해도 내 식대로” 기사의 사진
영국의 엘리스 크리스티(왼쪽)가 지난해 11월 18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쇼트트랙 월드컵 4차 대회 여자 500m 결승에서 우승한 뒤 두 팔을 치켜들며 기뻐하고 있다. AP뉴시스
“하나님 젠장 감사합니다. 제가 실격 처리됐다면 그녀를 죽여 버렸을 거예요(Thank f**king God. I would have blooming killed her if they DQ-ed me).” 엘리스 크리스티(28)는 지난해 3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열린 국제빙상연맹(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 여자 1500m 결승 라인을 1위로 통과한 순간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 코너를 돌 때 앞에 있던 대한민국의 최민정을 오른손으로 힘껏 밀쳐내고 골인했다.

크리스티는 지난 1일(한국시간)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당시 최민정은 레이스 초반 넘어져 한 바퀴를 덜 돈 상태였다. 크리스티는 “한국 코치가 소리를 지르자 넘어져 있던 그녀가 갑자기 트랙으로 돌아왔었는데, 규칙에 위배되는 행위였다”며 “내 앞을 가로막아 동료 한국 선수가 이기게 하려 했기 때문에 밀어내 버렸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는 그 한국 선수가 경기 직후 자신에게 “들은 대로 하는 게 우리 문화다”라며 사과했다고 주장했다.

쇼트트랙에서 한국의 대항마로 부상한 크리스티는 낯설지 않은 선수다. 그는 4년 전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 500m, 1000m, 1500m에서 ‘실격 3관왕’을 했다. 500m 결승에서는 넘어지면서 1위로 달리던 박승희까지 쓰러뜨렸다. 이때 부상을 입은 박승희가 1500m 출전까지 포기하자 한국 팬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크리스티를 거세게 비난했다. 그는 스포츠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아가며 수개월 전에야 트라우마를 극복했다고 한다. 크리스티는 “한국인들이 실제로 자신을 살해하려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크리스티는 위협에 맞서라는 니키 구치 코치의 권유에 따라 소치 동계올림픽 직후 한국에 들어와 훈련한 경험담을 털어놨다. 랩타임을 통과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트랙을 돌아야 하는 ‘군대식 훈련’이 고된 나머지 첫 2주간은 말도 못했다고 한다.

정해진 시간에 골인하지 못한 선수에게는 코치가 성을 내며 스톱워치를 집어던졌다고 그는 폭로했다. 아침이면 12살 선수들이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수천 번씩 ‘스케이트 스쿼트(허벅지가 무릎과 수평이 될 때까지 앉았다 섰다 하는 동작)’를 하는 장면을 봤는데, 제정신이 아닌 훈련에 어린 선수들이 울음을 터뜨렸다고도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한국에 왜 그리 성공한 운동선수가 많은지 알게 됐다”고 밝혔다.

크리스티는 인터뷰 내내 한국 선수들에 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는 “평창 동계올림픽은 한국인을 위한 홈경기인 셈이라서, 그들은 거침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선수들은 “강하고 유려하다”고, 중국 선수들은 “공격적이라 두렵다”고 평했다. 여러 명이 팀처럼 움직일 한국과 중국 선수들을 이기기 위해 육체적으로 뛰어나야 할 것이라고도 다짐했다. 원래 피겨 스케이팅을 하던 크리스티는 15살 때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꿨다. ‘가짜 미소’와 ‘주름 장식 의상’을 싫어했기 때문이라는 게 본인이 밝힌 이유다. 이제는 아시아가 수십년간 지킨 쇼트트랙 우세를 깨뜨릴 다크호스로 주목받고 있다.

그는 “세계 챔피언이 올림픽 메달리스트보다 훨씬 존경 받는다”며 “나는 꿈을 이뤘다”고 말했다. 지난해 쇼트트랙 세계선수권과 월드컵에서 여러 차례 우승했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올림픽 금메달을 얻으려 한다. 실격된다 해도, 그저 안전한 방법을 수락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