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정승훈] 고집쟁이 오베에게 박수를 기사의 사진
새해 첫날 강원도 강릉의 경포119안전센터 앞에서 벌어진 상황을 보고서도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일상의 반복, 데자뷔 같은 느낌이었다. 추운 날씨에 일출을 보러온 이들이 해변 가까운 곳에 차를 대고 싶은 건 인지상정이다. 주변에서 주차공간을 찾던 이들 중 꽤 많은 운전자는 차마 안전센터 앞에 차를 대지 못했을 게다. 하지만 어느 순간 과감하고도 무모한 한 운전자가 안전센터 귀퉁이에 차를 대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저 차도 저기 대는데…’라는 생각을 한 몇몇 운전자는 주저 없이 안전센터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12대의 차량이 안전센터 앞을 막을 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상당수 언론의 질타를 받으면서 부각됐지만 안전센터 앞 주차 시도가 올해만의 일은 아니다. 안전센터에 근무하는 소방관은 “매년 주차하려는 이들이 많아 주차하면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고 안내하곤 했다”고 전했다. 올해는 안전센터 근무 소방관들이 모두 출동한 탓에 주차하는 차량을 만류할 이가 없었다.

횡단보도 앞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세계 어느 곳을 가 봐도 대한민국만큼 횡단보도 신호등을 잘 지키는 곳은 드물다. 그러나 나란히 서 있던 한 사람이 어느 순간 도로로 뛰어들면 그동안 지긋이 잘 기다리고 있던 이들 중 상당수가 돌변한다. 갑자기 긴급 상황이라도 생긴 것처럼 신호등에 상관없이 도로 위로 뛰어드는 것이다. 일상에서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진실과는 상관없이 ‘나만 손해 보는 것 아닌가’ 혹은 ‘나만 뒤처지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인 듯하다.

쉬는 날 가끔 학원 간 아이를 데리러 갈 때도 마찬가지다. 학원가 인근 이면도로에 불법 주차가 일상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러다 보니 이제 이면도로 불법 주차 정도는 양심의 가책을 느낄 만한 일이 아닌 듯하다. ‘뚜벅이족’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심지어 보행자들이 다니는 보도 위에 차를 걸쳐놓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선 안 되겠지만 ‘혹시 학원 한 곳에서 불이라도 나면, 소방차는 어디에 세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곤 한다.

엊그제도 학원 인근 보도 위를 점령한 차량들을 보다 문득 ‘오베’를 떠올렸다. 아이가 쓰는 랩톱 위에 놓여 있던 책에서 봤던 인물이다.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작품 ‘오베라는 남자(A man called Ove)’의 주인공이다.

그는 웬만하면 마주치고 싶지 않은 까칠한 이웃 남자, 어쩌면 고루한 할아버지다. 오베는 불만이 많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욕설을 퍼붓는다. 이런 식이다. “자기네 집 부근에는 속도 방지턱도 몇 개씩 설치하고 ‘아이들이 놀고 있어요’라고 적힌 표지판도 빌어먹게 많이 걸어놨지만, 다른 사람들의 집 앞 도로를 지날 때는 그런 건 안중에도 없이 밟아댄다”고. 하지만 그는 규정을 지키는 사람이다. 다른 이들이 모두 90㎞까지 밟아대는 도로에서도 표지판대로 시속 50㎞를 준수한다. 뒤에서 빵빵거리고 위협을 해도 그는 제 갈 길을 간다.

고지식하고 꽉 막혔다는 소리를 듣더라도 원칙을 일관성 있게 지킨다면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제 아이나 주변 사람에게 가르치려 들다가도 이해가 걸린 순간 원칙을 내팽개친다면 그건 문제가 아닐까. 제천 참사 당시 불법 주차 차량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저런 놈들 때문에 문제야”라고 분개했던 이가 제 아이 학원 데려다줄 때 불법 주차를 한다면 낯 뜨겁지 않느냐는 얘기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주변에는 오베 같은 고집쟁이가 많은 듯하다. 경포119안전센터 앞에 주차한 이들보다는 그냥 지나친 운전자들, “저 사람은 저기 대는데 당신은 왜?”라는 핀잔을 받으면서도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주차구역에 차를 댄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새해 첫날부터 고집불통 소리를 들으면서도 끝내 안전센터로 핸들을 돌리지 않은, 많은 오베들에게 박수를!

정승훈 사회2부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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