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장윤재] 계속되는 창조 기사의 사진
성서에는 세 가지의 창조가 나온다. 첫째는 ‘태초의 창조’, 즉 원 창조다. 둘째는 ‘계속되는 창조’, 즉 현재의 창조다. 셋째는 ‘새 창조’, 즉 창조의 완성이다. 태초의 창조로 시간이 시작된다. 하지만 창조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성된다. 모든 창조가 이렇게 하나님 안에서 미래의 완성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 성서의 근본적인 믿음이다.

이러한 성서의 창조신앙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은 바울이다. 그는 하나님의 창조가 단지 과거에 이루어진 단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인 역동적인 과정임을 알았기에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참 의로움과 참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에베소서 4:22-24)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새 사람’은 신의 의로움과 거룩함 안에서 새롭게 창조된 인간이다.

예전에 경기도 안산에 있는 시화호가 썩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별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한 번 오염된 물은 좀처럼 맑아지지 않았다. 결국 최후로 내린 결단은 시화호 갑문을 열어버린 것이었다. 큰 바닷물 속으로 섞어버리는 것이다. 인근 바다가 오염되는 문제가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큰 바다의 자정 능력에 의지하는 것만이 그 썩은 물을 정화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었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날의 생활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도 약간의 수양과 약간의 선행으로는 정화되지 않는다. 큰 바다가 필요하다. 만물을 새롭게 창조하는 근원적인 힘이 필요하다.

이탈리아 나폴리에 음악을 몹시 좋아하는 소년이 살았다. 그 아이는 공장에서 일하며 어렵게 학교를 다녔는데, 음악시간에 가수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 선생님은 “네 목소리는 덧문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같으니 그 따위 꿈은 포기하라”고 말했다. 듣고 있던 친구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하지만 이 소년의 어머니만은 아들의 꿈을 무시하지 않았다. 남편을 일찍 잃고 홀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이 어머니는 어찌나 가난했던지 ‘맨발의 과부’로 동네에서 유명했는데, 있는 돈을 다 모아 아들의 레슨비를 대주었다. 이 어머니가 아들을 격려하며 늘 했던 말이 있었다. 무엇이었을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였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너도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새롭게 창조하신다, 그러므로 너도 새롭게 될 수 있다. 이 어머니의 믿음으로 탄생한 가수가 바로 세계적인 테너 엔리코 카루소다.

인간의 교만 가운데 가장 큰 교만은 무엇일까? ‘내가 최고다’라는 교만보다 더 큰 교만은 무엇일까? ‘나는 새로워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 ‘나는 이대로 완벽하다’는 자기착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신 앞에서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불신앙은 무엇일까? ‘나는 새로워지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일 것이다. ‘나는 가망이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 이런 생각은 태초에 무에서 세상을 창조하고, 혼돈에서 질서를 불러내며, 오늘도 날마다 세상에 새 생명을 부여하고, 마침내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는 하나님에 대한 가장 큰 불신앙이다.

새해가 밝았다. 사람의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으나 성서는 우리 자신과 온 세상이 하나님 안에서 새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고린도후서 5:17)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고린도후서 4:16) 창조는 과거에 단 한 번으로 끝난 사건이 아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이고 움직이는 힘이다. 우리 자신이, 우리 사회가 시화호처럼 병들었는가? 만물을 새롭게 변혁하시는 그분의 은총 안에서 새로 시작해보자.

장윤재 이화여대 교목실장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