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원로에게 듣는다] “교회주의로 교회는 살았지만 기독교는 위기 맞아”

(下) 김형석 교수의 한국교회 향한 조언

[한국교회 원로에게 듣는다] “교회주의로 교회는 살았지만 기독교는 위기 맞아” 기사의 사진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3일 서울 서대문구 원천교회 카페에서 한국교회의 ‘교회주의’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김 교수는 “교회는 사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교회주의’에 빠져 민족과 역사를 걱정 안 하는 교회는 있으나마나 한 것”이라고 말했다. 강민석 선임기자
올해 백수(白壽)를 맞은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3일 한국교회의 신앙 멘토로서 크리스천들과 목회자들을 향해 따뜻하지만 예리한 조언을 들려줬다. 서울 서대문구 원천교회 카페에서 만난 김 교수는 한 시간 넘는 인터뷰 동안 흐트러짐 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 교수는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종교의 쇠락이라는 관점에서 한국 기독교의 위기를 진단했다. 그는 “1970년대 해외를 다니면서 현대사회를 이끌어 갈 수 없는 종교 국가들의 실체를 접했다”며 “근본주의 신앙에 빠진 이슬람교 국가들, (힌두교를 믿는) 인도와 동남아의 불교 국가들은 종교의 근본주의 신앙을 극복하지 못하면 국민도 불행해지고 선진 국가로 갈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동시에 그는 “뜻밖에도 교육 수준이 높은 선진국가일수록 교회가 문을 닫고 쇠퇴하는 것을 봤다”며 “개발도상국 수준이 될 때까지는 종교가 사회를 책임질 수 있지만, 그 이상 국가가 발전하면 사회의 교육이나 지적 수준을 교회가 따라가지 못한 채 뒤처진다. 결국 교회에 가서 배울 것도 얻을 것도 없으니 사람들이 교회를 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현재 겪는 어려움에는 ‘기독교와 교회가 하나’라는 잘못된 ‘교회주의’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교회주의로 흐르면서 교회는 살았지만 기독교 정신은 버림받아 기독교가 쇠퇴했다”며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교회에 대해 걱정한 적이 없는데, 목사들은 오로지 교회 걱정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교회는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공동체 가운데 어머니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공동체일 뿐”이라며 “교회 밖에도 기독교 대학, 병원, 직장 같은 공동체가 있을뿐더러 가정도 작은 기독교 공동체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따금 초청받아 교회에서 설교도 하고, 평신도로서 예배도 드리지만 교회에 연연하지 않는다. 교회가 성도의 신앙을 키워주기는커녕, 목사의 우산 밑에서 못 자라게 막고 있다면 굳이 교회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김 교수는 “시골에 가 보면 여전히 지역 사회에는 교회가 필요하다”며 “시골에 가서 목사들이 목회하면서 정신적으로 지역 사회를 이끌어간다면 그것이 곧 예수님을 대신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라 지금 같은 교회는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교회나 교단 장로 등을 상대로 강연을 왕성하게 다닌다. 그는 “목사들이 너무 공부를 안 한다”며 “목사가 공부를 안 하니 장로도, 성도도 공부를 안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목회자들이 신학이나 성경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세상, 특히 ‘인간’에 대한 이해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목사가 교인을 자신보다 훌륭한 신앙인으로 키워내는 게 아니라 (목사에게) 복종하는 사람으로 키우려고 하니 문제”라고 지적했다.

목회자들의 지나친 소유욕에 대해서도 그는 할말이 많았다. 김 교수는 “가톨릭 사제나 불교 승려 제도가 옳다고 보진 않지만, 만나보면 이들은 돈이나 자리 등에 대한 소유 욕망이 없다”며 “하지만 목사들의 경우 소유욕은 물론 명예욕까지 버리지 못하는 이가 많다”고 말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이었던 지난해 장신대 총신대 감신대 등 주요 신학대들이 홍역을 치른 것도 “목회자들이 권력욕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명성교회 세습과 관련, “기독교에서 세습 문제를 이야기하게 됐다는 것 자체부터 잘못”이라며 “세습은 소유욕의 하나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굴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사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김 교수는 “예수님의 교훈과 말씀을 나의 인생관, 가치관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 크리스천”이라며 “인간 존엄성을 지키고, 자유를 사랑하고, 이웃에 사랑을 베풀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여러 곳에서 상을 받았는데, 내가 노력해서 벌지 않은 돈은 소유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상을 받고 나니 오히려 걱정이 생겼다”며 “제자들에게 사회를 위해 써 달라고 부탁한 뒤에야 마음이 편해졌다”고 전했다. 그는 “예수님 말씀을 따라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신앙인의 가치관 아니겠느냐”며 “평생 살아오면서 철학적으로, 또 다른 종교도 다 봤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교훈 이상으로 나와 민족을 위한 희망은 없었기에 기독교를 떠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형석 교수=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났다. 일본 조치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철학과 교수, 미국 하버드대 연구교수 등을 역임했다. 대한민국 1세대 철학자로 많은 제자를 키워냈다. 1960∼70년대 ‘영원과 사랑의 대화’ 등의 저서에 이어 최근 출간한 ‘백년을 살아보니’ ‘인생의 길, 믿음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등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지금도 수영으로 건강을 관리하며 집필과 강연, 방송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글=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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