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이경원] 투수 신창호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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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보다 나은 재능이라고 했다. 투수 전직 한 달 만에 봉황대기에서 시속 150㎞ 직구를 던졌다. 계속 포수를 하면 서울 소재 대학엔 갈 거라며 모험을 만류하던 이들이 외려 무르춤해졌다. ‘파이터형 투수’ ‘칠 테면 치라는 배짱’ 같은 말들이 스카우팅 리포트를 채웠다. 2006년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에서 LG 트윈스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기대를 모았던 신인의 프로야구는 더 기록되지 않는다.

며칠 전 그는 난로를 때는 실내 야구연습장 한편에 앉아 있었다. 어린 선수들이 “감독님, 가보겠습니다”하고 물러갔다. 전 KIA 타이거즈 투수 신창호(31)는 “이제 도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너무 아팠던 시절이라 애써 잊은 것 같다.” 그는 의외로 프로에서 처음 상대한 타자를 기억하지 못했다. 누굴 향했는지는 몰라도, 이 악물고 온몸으로 던진 공임은 분명하다. 우악스러운 폼을 보던 코치는 “다리만 곱게 들었다 내리자”고 했다. 강한 공을 보이고픈 마음에 팔엔 계속 힘이 들어갔다. 부상을 막자는 폼이 부상을 불렀다.

방출 풍경은 아는 이들만 안다. 찢어진 팔꿈치 인대를 재활하던 어느 날 육성팀장이 찾아와 “함께 못 간다”고 말했다. 전화로 통보받은 선수들에 비하면 따뜻한 작별이었다. 그는 구단이 20명을 보강한다는 건 20명을 해고한다는 뜻임을 그때 알았다. 가을야구가 온통 시끄럽던 9월이었다. 사람들이 야구를 잔치라 부를 때였다.

신창호는 야구를 관둘 작정으로 군에 입대했다. 그의 이력을 전해 들은 고참들은 저녁마다 프로야구 중계를 틀었다. 류현진 강정호 차우찬 손영민…. 유난히 야구를 잘하던 ‘87 동기’들이 TV 화면에 자주 나왔다. 그러면 이병 신창호는 입술을 깨물고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억지로 야구를 보던 어느 날 ‘내가 아직 스물넷인데’ 싶었다. 휴가를 얻어 놔뒀던 팔꿈치를 수술했다. 병원비 200만원을 직접 냈다.

전역하자마자 고교 시절 코치를 찾아가 동계훈련에 데려가 달라고 사정했다. 새파란 후배들과 겨우내 구르고 달렸다. ‘1라운더’의 자부심 따윈 버린 지 오래였을 것이다. 2010년 독립야구단 서울 해치가 창단해 테스트를 신청했다. 일본 간사이 독립리그에서, 그는 재활 3년 세월을 공에 실어 던져버렸다. 8이닝 10탈삼진 무실점을 하니 KIA 타이거즈가 그를 불렀다. 계약금 없이 연봉 3000만원, 등번호 95번의 신고선수였다.

돌아온 길은 각인된다. 신창호는 2012년 7월 복귀한 1군 마운드를 생생히 그렸다. 넥센 히어로즈에 크게 앞선 9회초였다. 첫 타자 이성열은 1루수 직선타였다. ‘딱’하는 순간, 야수 정면임을 직감했다 한다. 오윤은 삼진, 정수성은 우익수 플라이. 3아웃까지 공 10개만 필요했다.

울산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3이닝 노히트 한 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신난다. 하지만 더 많은 경기에서 그는 얻어맞았다. 142㎞, 143㎞…. 예전의 그 공이 아니었다. 정식 선수가 돼 새로 택한 등번호 37번은 그 번호를 달던 임창용이 KIA에 온다는 소문에 알아서 반납했다. 임창용은 정작 12번을 골랐지만, 프로란 원래 그런 거였다. 2016년 7월 올스타전 무렵 육성팀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사람들이 야구를 축제라 부를 때였다.

“타자들이 잘 치더냐”고 물었더니 그는 “내 공이 부족했다”고 답한다. KIA를 나와선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에 몸담았지만 잠깐이었다. 이제 그는 칠 테면 쳐 보라는 투수가 아니라 경기 구리시 유소년야구단의 감독이다. 깜찍한 로고로 덮인 노란색 승합차를 운전해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다준다. 전문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보여주며 “아이들 야구가 늘면 보람차다”고 한다. 구속 1㎞ 올리는 데 2년도, 아니 3년도 걸린다는 걸 아는 그다.

관중석에 편히 앉은 세상은 젊은이에게, 명예퇴직자에게, 아픈 투수에게 “왜 더 도전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신창호는 “내가 벌써 아들이 둘이다”며 웃는다. 세상은 “후회하지 않겠느냐”며 훈장질이다. 손을 떠난 공이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그만큼 잘 아는 이가 있을까. 신창호는 아직도 ‘그때 이 코스에 던질 걸’하는 생각에 잠긴다.

매년 약 900명의 고교 야구선수가 졸업한다. 프로가 되는 건 100명 안팎이고, 이 중 사람들이 기억하는 건 5명쯤이라고, 신창호는 말했다. 단 한 경기를 못 뛰고 사라지는 선수가 수두룩하다. 그는 LG와 KIA 소속으로 59경기에 출장해 3패, 평균자책점 6.75의 기록을 남겼다. 그와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스마트폰을 보니 한국야구위원회 신임 총재가 “야구는 힐링”이라고 말한 모양이었다.

글=이경원 스포츠레저부 기자 neosarim@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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