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림의 인사이드 아웃] 진은숙과 ‘아르스 노바’가 남긴 것들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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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연주되는 ‘고전음악’ 가운데 동시대인들에게 환영 받은 작품은 극히 드물다. 모차르트의 음악들은 생전에 라이벌 살리에리의 작품들에 열세를 면치 못했으며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은 초연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형편없고 더할 수 없이 음란한 음악”이라는 평을 받고 베토벤 생전에는 두 번 다시 연주되지 못했다.

이런 명곡들은 시대를 앞서가는 작품임에 틀림없지만 자생 능력이 없다. 무형 예술인 음악은 연주자와 시스템을 통해 꾸준히 발굴되고 반복해야 보존이 가능하다. 해외에서 흥행이 부진한 와중에도 현대음악이 위촉되고 꾸준히 연주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사실 이런 음악은 동시대인들이 스스로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보내는 메시지인 셈이다.

상주작곡가는 동시대 유명 작곡가를 지명하여 소속 악단들이 작품을 집중적으로 위촉, 연주하며 기록으로 남기는 제도다. 세계 유수의 악단과 축제, 공연장들이 도입하고 있다. 2005년 재단 체제로 새롭게 태어난 서울시립교향악단 또한 이 제도를 도입해 독일에서 활동 중인 작곡가 진은숙을 영입했다. 경제적·음악적 지원을 받으며 창작활동에만 몰입할 수 있는, 작곡가로서는 최고로 실속을 챙길 수 있는 이 제도를 진은숙은 좀 다르게 활용했다. 자신의 작품을 내세우는 대신 연중 상설 현대음악 프로그램인 ‘아르스 노바’(새로운 음악)를 기획한 것이다.

‘아르스 노바’는 출발부터 청중과 악단을 동시에 조련하는 교육적 성격이 짙었다. 당시 서울시향의 연주력은 복잡한 현대음악을 온전히 소화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한국 청중들은 진은숙의 음악은커녕 20세기 음악조차 낯설어했다. 2006년 제1회 ‘아르스 노바’에서 연주된 드뷔시의 바다는 전 세계에서 수시로 연주되며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는 명작임에도 당시 서울시향의 연주는 처참했고 기본기 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0년 서울시향은 이 음악을 유럽 투어에서 연주하고 이듬해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발매한 첫 앨범에도 수록, 전 세계 평론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악단의 기량향상이 여실히 증명되었고 이는 분명 ‘아르스 노바’의 결실이었다.

진은숙은 자신의 국제적 인맥을 총동원해 서울시향이 해외 무대의 창작곡 위촉과 초연에 동참하는 데 헌신하는 중개자 역할도 했다. 덕분에 2011년부터 서울시향은 베를린 필이나 뉴욕 필, 콘세르트허바우 같은 국제적 악단들과 공동 위촉단체로 참가하며 어깨를 나란히 해 왔다. 이를 통해 서울시향은 국제 무대에서 수준 높은 악단이란 이미지를 구축할 수 있었고 위촉한 작품들의 아시아 초연은 모두 서울시향이 가져올 수 있었다. 해당 작품의 아시아 초연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작곡가들과 한국 작곡 지망생들과의 교류의 기회 또한 진은숙의 주도로 마련됐다.

그녀는 고국의 후학 양성에도 ‘아르스 노바’를 적극 활용했다. 마스터 클래스를 통해 한국 학생들은 그녀로부터 무료로 개인 레슨을 받았고 굳이 유학을 가지 않고도 해외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로부터 ‘올해의 작곡상’을 받은 신동훈, 코리안 심포니 전임 작곡가 김택수는 ‘아르스 노바’에서 발굴된 유망주들이었다.

이러한 성과들은 해외에서 먼저 관심을 받았다. 독일 음악잡지 ‘노이에 무지크차이퉁’에 의해 집중 소개되었으며 영국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는 벤치마킹을 위해 관계자를 서울에 파견했다. 이런 의미 있는 성과들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의회는 유료관객 부족을 이유로 올해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상주작곡가이면서 악단을 위한 작품을 하나도 작곡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음악감독 사임 뒤 표류중인 악단의 프로그래밍을 위해 원하지 않았던 공연기획자문위원직을 떠안은 그녀에게 겸직을 통해 경제적 이득을 취했다는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올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임 의사를 밝혔다.

돌아보면 ‘아르스 노바’로 얻은 성취는 오롯이 서울시향의 것이었을 뿐 ‘진은숙’이란 이름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악단과 한국 음악계의 발전을 위해 작곡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마저 희생한 그녀에게 고작 이런 보상밖에 해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수준이고 현실이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노승림<음악 칼럼니스트·문화정책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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