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강주화] 존재의 집 기사의 사진
주말에 본 영화 ‘1987’(감독 장준환)에서 유난히 뇌리에 박히는 대사가 있었다. 박종철이 숨졌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수사요원들이 했던 “받들겠습니다”란 말이다. 이들은 대공분실을 관장하는 박처원 처장(김윤석)이 지시를 할 때마다 “받들겠습니다”를 반복했다. 명령에 충성하겠다는 의미다.

“받들겠습니다”는 대공분실과 당시 전두환 정권의 성격을 함축한다. 상명하복(上命下服). 요원들은 “‘빨갱이’를 때려잡는 것이 애국”이라는 박 처장의 신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을 데려다 고문해 용공분자로 만드는 것이다.

시인 곽재구는 ‘받들어 총’으로 상징되는 이 권력을 향해 할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전쟁놀이를 한다/ …/아파트 화단에 피어난 과꽃/ 한 송이를 꺾어들며 나는 조용히 얘기했다/ 그리고는 그 꽃을 향하여/ 낮고 튼튼한 목소리로/ 받들어 꽃/ 하고 경례를 했다” 그의 시 ‘받들어 꽃’의 일부다.

평범한 사람들이 ‘군사정권의 만행과 잔재에 진저리가 난다’며 욕을 할 때 시인은 이렇게 ‘받들어 꽃’이란 노래를 불렀다. 이 시를 읽으며 사람들은 고요한 평화와 싱그러운 자유를 상상할 것이다. 시인이나 소설가 같은 문인의 글이 우리 삶에 희망이 되는 이유는 이렇게 거친 현실을 비틀거나 경계를 허물며 상상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다. 문인들은 이 존재의 집을 끊임없이 부수고 확장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얼마 전 쓴 성명을 보고 “받들겠습니다”란 말을 들을 때 느낀 갑갑함을 느꼈다. “문학인들은 용산 부지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하여 그 어떤 정치적인 이해와 책동이 끼어드는 것도 단호히 거부한다.” 국립한국문학관 건립에 관한 한국문인협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시인협회 등 10개 문인 단체의 성명이었다.

문학인들은 문학관 부지에 대해 타협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이어 “그 누구라도 국립한국문학관 건립 자체를 부정한다면 모든 문학인의 이름으로 대항할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 글이 문인들의 마음을 표현한 ‘존재의 집’인가. 문학관 건립 취지를 부정하자는 건 아니다. 그 과정을 둘러싸고 문인들이 쏟아낸 적대적이고 경직된 언어가 안타깝고 서글플 따름이다. 문인들에게 품격 있는 언어를 기대하는 게 나만의 바람일까.

강주화 차장,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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