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명희] 1987년의 기억 기사의 사진
그해 봄 교정은 유난히 붉었다. 백양로를 따라 흐드러지게 만개한 철쭉 때문이었을 거다. ‘이단아’ 마광수 교수는 대형 강의실 탁자에 턱 걸터앉아 담배를 꼬나물고 이상의 ‘오감도’와 김유정의 ‘봄봄’을 얘기했다. 13인의 아해들이 왜 도로를 질주하는지, 점순이가 데릴사위 노릇을 하는 주인공에게 왜 닭싸움을 거는지 그만의 독특한 성(性) 담론을 풀어냈다. 그것도 잠시, 대학은 마냥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직선제 개헌 논의를 뒤집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4·13 호헌 조치 이후 수업을 거부하고 집회와 시위에 나섰다.

중앙도서관 앞 광장 연단에 우뚝 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총학생회장은 그의 이름처럼 신입생들에겐 우상이었다. 인문대 앞 잔디밭에서 매일 오전 열리는 과 단위 집회의 참석 인원은 시간이 갈수록 줄었다. 어느 날 동기 남학생이 오지 않았다. 이틀 뒤 나타난 그는 유인물을 가방에 넣고 가다가 ‘닭장차’(전경차)에 끌려가 흠씬 두들겨 맞고 경찰서 가서 취조를 당한 뒤 하룻밤 자고 훈방으로 풀려났다고 했다.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학교 앞 굴다리 아래를 지날 때면 전경들이 남학생은 물론 여학생들 가방을 뒤지는 게 다반사였다. 5월 노천극장에서 우리는 시민군과 계엄군으로 나눠 광주항쟁 상황극을 재연했다.

6월 이한열군이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뒤 경찰이 시신을 강탈해 갈 것이라는 소문이 교내에 돌기도 했다. 와이셔츠 부대까지 나섰고 그 결과가 직선제 개헌을 하겠다는 6·29 선언이었다. 하지만 그해 겨울 야당 대선 후보 단일화 실패로 또 기말시험 거부와 시위가 이어졌다. 87학번은 2학년이 돼서야 처음으로 기말시험을 치렀다.

엊그제 문재인 대통령과 1987년 6월 민주항쟁을 이끌었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전 원내대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등 586세대(5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들이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1987’을 관람했다고 한다. 이 영화는 ‘어떻게 얻어낸 민주주의인데’라며 30년 뒤를 살아가는 우리를 질타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느리더라도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최상의 합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지지율에 취해 일방 통행하는 것도 반대편에서 보면 ‘불통’이고 ‘독재’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촛불집회의 국민적 열망인 개헌을 팽개친 정치권이나 586세대도 초심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려 했던’ 두 청년의 죽음을 헛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글=이명희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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