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남북 단일팀 협상은 ‘스포츠 안보戰’… 91년 청소년축구팀 비화 기사의 사진
1991년 5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축구 단일팀 선수선발 평가전에 참가한 전남 드래곤즈 유상철 감독 등 남한 선수들이 관중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입장하고 있다. 남북 단일팀은 포르투갈에서 열린 제6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8강에 올랐다. 아래쪽 사진은 남북 단일팀의 북한 공격수 최철이 브라질전에서 헤딩슛으로 골을 넣는 모습. MBC 방송화면, 유튜브 영상 캡처
관계기관 대책협의회 열어
북측 돌출행동 가상해 대응

北 감독에 선수기용 전권
南 코치와 불화 없도록 조치
결단식 단기 수여자도 협의

단일팀 왜 쉽지 않은지 실감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이 실제 출전한 건 1991년의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 등 두 차례뿐이다. 남북이 상대방을 물리치는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지만, 그 무대를 마련하기까지의 외교·안보 이슈는 첨예했다. 청소년축구 단일팀을 준비했던 과거의 뒷이야기들은 평창 동계올림픽의 단일팀 구성 논의가 왜 쉽지만은 않은지를 보여준다.

국가안전기획부, 통일원, 공보처, 외무부 관계자 등 15명은 91년 5월 16일 ‘남북 단일팀 참가 관련 관계기관대책협의회’를 열었다. 가장 먼저 “우리 임원들을 대상으로 유엔 가입 문제, 통일 방안 등에 관한 남북 입장 차이점 사전 교육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북한이 유엔 가입 문제, 남북통일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외신 앞에 일방적으로 홍보할 상황에 대비하라는 것이었다.

정부 관계자들은 “일본에서와 같은 북측의 조직적 활동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1개월 전인 91년 4월 남북은 일본 지바에 탁구 단일팀을 파견했는데, 북한은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활발히 교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에 비해 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가 열릴 포르투갈에는 북측 교민이 없고 우리 교민도 소수만 거주한다는 보고였다.

다만 인민군 장성 출신 노동당 간부들이 단일팀에 동행하는 것이 경계 대상이었다. 정부 관계자들은 “북측은 노련한 ‘김정식’이 공보직을 맡은 반면 우리 측은 신정섭 축구협회 이사가 공보를 담당하고 있으므로 북측 페이스에 말려들 우려가 있다”고 분석했다. “김세진 김정식 등 국가체육위 국장급과 이영복, 채창국 등 북측의 의사결정에 영향력 있는 노련한 인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음을 감안할 때 장충식(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단장에게 북측 임원들의 행동이 부담이 될 우려가 있다”는 보고도 있었다.

정부는 안기부 공작심의실장을 반장으로 현지 대책반을 꾸린 뒤 모든 대외 발표 내용을 검토하라는 방침을 세웠다. 선수단의 대외적 공식 발언은 모두 장 단장이 맡도록 했다. 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과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앞둔 때여서 북한 김형진 국가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이 차기 체육회담의 시기나 의제를 제안해올 가능성도 예상됐다. 이때 정부 관계자들은 “현지에서 판단이 어려우면 적절한 경로로 추후 협의하자는 의견을 펴라”고 지시했다.

정부는 선수 훈련 방법, 기용 문제를 두고 감독과 코치가 불화를 일으킬 가능성도 우려했다. 당시 축구 단일팀 감독은 북한의 안세욱 책임지도원, 코치는 남한의 남대식 한국청소년대표팀 감독이었다. 문화부는 “기본적으로 선수 기용은 감독의 전권사항이므로 불협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 측 임원진에게 주의를 촉구한다”고 했다.

5월 선수단 결단식에서 누가 치사(致詞)를 할지, 단기 수여는 누가 누구에게 할 것인지도 남북이 협의할 문제였다. 북한은 축구협회장이나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의 치사는 동의했지만 남한 장관의 치사는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는 결단식에서 “통일축구대회처럼 음식은 푸짐하게”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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