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트렌드] 30대 가장의 ‘과로자살’…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 이야기 기사의 사진
지난해 ‘과로자살’로 남편을 떠나보낸 강혜영(가명)씨가 그림치료를 하며 그린 그림. 지팡이를 짚은 사람이 거대한 산과 쏟아지는 흙에 짓눌려 있다. 혜영씨는 그림설명에 “남편이 나를 묻으려 하는구나. 버티고 있는 나는 지팡이에 의존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썼다.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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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로사회’의 피해자들

생후 77일 아기와 아내를 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39세 직장인
동료는 “회사가 죽였다”고 했지만
회사는 “산재가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
가족에겐 출퇴근 기록도 안보여줘
회사 압박에 동료들도 하나둘 입 닫아
‘우울증으로 출근이 어렵다’는 문자 메시지
‘피로감 많음’ 의사 소견서 한줄이 증거로 남아

남겨진 이들은 가족이 떠난 슬픔에
원망과 죄책감이란 짐까지 짊어져


오전 2시55분. 침대를 벗어나 움직이기엔 어색한 시간. 이채현(가명)씨는 회사 작업복을 입고 집을 나섰다. 철컹. 잠귀 밝은 아내 강혜영(가명·36)씨가 현관문 닫히는 소리에 깼다. 어둠 속에서 더 날카로운 휴대전화 불빛을 견디며 더듬더듬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벌써 출근했네∼.’ 답장은 없었다.

꼬박 하루가 지난 다음날 오전 3시20분쯤. 혜영씨 동생 강혜진(가명·31)씨는 형부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넋이 나간 언니의 전화였다. 형부는 부모가 사는 아파트에 올라가 허공에 몸을 던졌다. 잿빛 작업복을 입고 갈색 안전화를 신은 채. 혜진씨는 꿈이라 생각했다. 형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았다. 경찰의 사망 추정 시간은 2017년 6월 17일 0시50분. 향년 39세였고 그에겐 태어난 지 77일 된 아기가 있었다.

“저러다 언니도 죽으려 할까봐…”

형부는 좋은 사람이었다. 남이 싫은 소리를 해도 허허실실 웃어넘겼다. 간호사인 혜진씨가 일이 힘들다고 투정부리면 묵묵히 들은 뒤 “고생 많다. 네 일이 제일 힘들지”라며 맞장구를 쳐주곤 했다. 형부는 경남의 대기업에 다녔다. 연구원이었는데 최근엔 전공과 무관한 관리업무를 하고 있었다.

화 한 번 못 내던 이가 언젠가부터 생전 안 하던 반찬투정을 했다. 아기에게 분유 먹인 걸 잊어버려 두 번 먹이기도 했고, 방금 기저귀를 갈아주고도 또 기저귀를 찾았다. 아내에게 회사 가기 싫다고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 “내가 뭐가 문제지?” “너무 힘들다.”

혜진씨가 마지막으로 본 형부도 그랬다. 지난해 5월 언니 집에 갔을 때 지친 얼굴의 채현씨는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처음 있는 일에 당황한 혜진씨가 서울로 돌아오고 한 달 뒤 형부는 죽었다. 혜진씨는 “그때 알아차렸다면…”이라고 말했다.

혜진씨는 이후 언니와 함께 지냈다. 석 달 동안 불을 켜놓아야 잠들 수 있었다. 사망 소식을 전하려 성난 듯 울어대던 어둠 속 통화음이 무서웠다. 처음 한 달은 하루 3시간도 못 잤다. 가장 큰 이유는 언니였다. “저 사람(언니)이 언제 죽으려 할지 모르니까… 누워 있는 언니를 가만히 쳐다보다 자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야 잤다”고 혜진씨는 말했다.

회사는 거부했고 법은 방관했다

채현씨의 한 직장동료는 유족에게 “회사가 죽였다”고 말했다. 혜진씨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언니를 대신해 형부의 ‘과로자살’을 규명하고자 했다. 지난 반 년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간호사 격무에 시달리다 퇴근 후엔 곧바로 경남으로 내려갔다. 왕복 9시간이 걸리는 길을 오가며 산업재해 관련 자료를 찾고 지인이나 친구에게 정보를 구했다.

노력에 비해 성과는 적었다. 회사는 거부했고 법은 방관했다. 회사는 사내에서 사망하지 않았으니 산업재해가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혜진씨는 회사에 채현씨의 출퇴근 기록, 퇴직소득정산서, 사내 단체상해보험 증서 등을 요구했지만 받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회사는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하지 않았음을 입증할 책임이 없다. 입증은 유족의 몫이다. 하지만 출퇴근 기록이나 직장 CCTV, 컴퓨터 접속기록 등에 유족이 접근할 법적 근거는 또 없다.

혜진씨는 “근로자를 위한 법이 없다는 걸 절감했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근로기준법의 과로사 규정은 명확하지 않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도 재해 인정 기준이 엄격해 과로사 인정을 받기 어렵다. 한국은 과로사·과로자살에 대한 공식 통계도 없다. 산재는 근로자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의 문제로 다뤄지지 않고 있었다. 유족은 채현씨의 직장동료들에게 증언과 증거를 얻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혜진씨는 “회사에서 명예훼손 등을 언급하며 압박을 했다더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를 도와주려던 이들에게 미안했고 또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채현씨 유품도 직접 가서 찾지 못했다. 혜진씨는 회사가 기밀사항이란 이유로 외부인 출입을 금지했다고 말했다. 얼마 후 유품을 전해 받았는데, 청테이프로 휘감은 상자 하나에 들어 있었다. 이를 받아든 혜영씨는 “남편이 이런 취급을 받았구나”라고 동생에게 말했다.

의사 소견서… ‘피로감 많음’

그래도 혜진씨는 악착같이 자료를 모아 왔다. 형부가 쓰던 휴대전화, 그가 다니던 길 주변 CCTV를 샅샅이 뒤졌다. 노무사도 찾아갔다. 지난해 7월 만들어진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에 참여해 정보를 공유하고 언니와 함께 트라우마 치유 과정을 거쳤다.

아직은 실낱같은 희망일 뿐인 자료들을 보며 혜진씨는 ‘형부가 힘들게 살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혜진씨는 형부의 직장동료에게서 형부가 과도한 업무 압박과 상사의 모욕에 상시적으로 놓여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명문대를 나온 채현씨에게 “○○대 나왔는데 그거밖에 못하냐”는 식으로 망신을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앞서 과로사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한 일본은 장시간 노동에 따른 신체적 부담뿐 아니라 업무목표 스트레스, 과다 업무의 정신적 부담, 사내 괴롭힘 등이 과로사망·과로자살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채현씨는 숨지기 전날 상사에게 ‘우울증이 심해 출근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그 전날에는 ‘죄송합니다. 오늘은 아예 출근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제 한계인 것 같습니다’라고 문자를 보냈다. 또 그 전날에는 출근했다가 병원을 찾아 영양제를 맞고 회사로 돌아갔다. 그를 진료한 의사 소견서에는 ‘피로감이 많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세상을 떠난 채현씨 휴대전화는 여전히 개통돼 있다. 혜진씨는 그 전화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고 했다. 너무 힘들면 보이지 않는 곳에 둔다. 그래도 ‘불편한’ 휴대전화를 갖고 다닌다. 혹여 억울한 죽음을 뒷받침할 새로운 자료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혜진씨는 가끔 휴대전화에 담긴 사진들을 본다. 형부와 언니의 웃음, 자기를 보고 부모가 웃었다는 것도 모르는 조카의 모습이 남아 있다. 그럴 때마다 ‘조급해하지 말자. 천천히 밟아가자’고 되뇐다. 목표는 언니, 조카와 행복하게 사는 일이다. 혜진씨는 “남겨진 우리가 잘사는 모습을 형부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러려면 산재가 인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을 보내고 그린 그림

“나는 남편이 죽을 줄 몰랐다.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 차라리 내가 죽이고 싶다.” 혜영씨는 남편을 보낸 뒤 ‘슬픔을 온전히 느끼지도 못한 채 모든 뒤처리와 함께 남겨진 사람’이 됐다고 했다. 남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과 타인의 시선이 비수가 된다.

혜영씨는 한국과로사·과로자살유가족모임에서 그림치료를 받았다. 트라우마는 그의 그림에도 드러난다. 거대한 산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종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산’의 왼편에서 산사태처럼 여러 선이 난잡하게 쏟아져 내린다. 그 밑에는 지팡이를 짚은 한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있다. 거대한 산과 쏟아지는 흙에 온몸이 짓눌린 채다. 혜영씨는 그림설명에 “남편이 나를 묻으려 하는구나. 버티고 있는 나는 지팡이에 의존한 채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썼다.

그림치료를 진행한 상담 전문가 정주영씨는 “과로사·과로자살의 경우 유족에겐 갑작스러운 죽음이므로 놀라움과 슬픔 외에도 원망스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원망과 절망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또 다른 죽음을 부를 수 있다”고 말했다.

혜영씨의 다른 그림에는 1만원권, 5만원권 지폐들이 허공에 휘날린다. 그는 “남편의 죽음 이후 슬픔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건 빚이다. 보상은 언제 될지 요원하고 생활비는 버겁다.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원망이 앞서곤 한다”고 했다. 정주영씨는 “유족들에게 보이는 일반적인 감정”이라며 “당장 생계 문제에 슬픔을 충분히 느끼고 애도할 여유마저 없는 게 이들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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