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맹경환] “엑소 팬입니다” 기사의 사진
온라인 뉴스 부서에 있다 보니 이런저런 전화를 참 많이 받는다. 처지를 하소연하는 사람도 많고 전화를 들자마자 막무가내 욕부터 해대는 사람도 있다. 때로는 업무를 하기가 힘들 정도다. 한번은 7년 전 민망한 일에 얽혀 처벌을 받았다는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새로 가정도 꾸리고 새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과거 일에 관한 기사를 삭제해 달라는 읍소였다. 문제의 기사를 보니 형 집행도 끝난 상황이고 사정도 안타까웠다. 폭설에 따른 제주공항 상황을 다룬 기사에서 활주로 마비가 ‘밤사이 얼어붙어서’ 그런 게 아니라 ‘아침부터 내린 눈 때문’이라고 팩트를 지적한 전화에는 “죄송하다”며 즉시 수정을 한다. 이런 전화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는다.

최근 영화 ‘1987’을 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근황을 전한 기사에도 역시 반응이 왔다. 기사에 이근안은 ‘늙고 배 나온 80대 노인’의 행색으로 표현돼 있다. 목소리로 볼 때 중년 이상일 것 같은 남성은 다짜고짜 기사 쓴 기자를 바꿔 달라고 했다. 자리에 없다고 하자,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놓는다. “이근안 모습을 직접 봤냐. 늙고 배 나온 80대 노인이라니. 이렇게 한 사람의 인권을 훼손해도 되느냐”고 했다. “이근안이 얼마나 많은 인권을 유린했는지 생각해봤느냐”고 되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논쟁을 하면 상대방은 더 흥분하고 그만큼 더 시간은 길어진다. 그는 “대한민국이 어떻게 가려고 이러느냐. 김정은이 책상에 핵단추가 있다고 하는 마당에 국민일보 건물 위에 핵이 폭발해야 정신을 차릴 것이냐….” 이렇게 전화기를 들고 있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 “예, 예, 감사합니다” 하며 전화를 끊었다.

황당하면서 참 속상한 전화도 있다. 지난달 14일 문재인 대통령의 국빈 방중 과정에서 동행 취재하던 한국 사진기자들이 중국 경호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였다. “기레기들 맞아도 싸다”는 댓글이 달릴 때만 해도 철모르는 애들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나이 지긋한 남성이 전화로 “기자들 문 대통령에게 사사건건 시비 걸더니 아주 참 잘 맞았다”를 반복했다. 맞을 만한 짓을 했으니 맞은 거라며 중국 측 폭력에는 입을 닫았다. 소름이 끼쳤다. 할 말을 잃고 그냥 수화기를 내려놨다.

그리고 새삼 지난달 초 걸려왔던 아이돌 그룹 EXO(엑소) 팬들의 ‘전화 폭격’이 떠올랐다. 수십명 팬들이 돌아가며 전화한 이유는 한 음악방송 시상식 영상을 바탕으로 한 기사 때문이었다. 영상에는 같은 시상식에 참가한 워너원을 향해 누군가가 “짬밥이 있는 거잖아요” “워너원, 뒤에 앉아라”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기사는 그냥 사실만을 전달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워너원에게 자리 교체를 요청한 누군가를 엑소의 팬클럽 ‘엑소엘’로 지목했다. 당시 연관 검색어로 ‘엑소엘 사과해’도 등장한 상황이었다.

엑소엘들은 바로잡고 싶어했다. 흥분할 만도 했지만 “전 엑소 팬입니다”로 시작하는 중고생들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예의가 느껴졌다. 기사에 “엑소 팬이 그랬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고 얘기해도, 무조건 “기사를 내려야 한다”고 했다. 협박성 엄포에도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전화가 잦아든 후 기사 속 워너원을 향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일부 팬’에서 ‘일부 참석자’로 바꾸는 성의를 보였다. 첨부돼 있던 영상도 뺐다.

알고 보니 엑소 팬들은 관련 기사를 쓴 언론사에 조직적으로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SNS에는 항의 전화를 독려하는 글이 보였다. “안 좋은 해석으로 퍼져 나가는 기사들입니다. 소설을 쓰고 계시는 기자분들께 최대한 논리적으로 문의 넣어주세요”라며 관련 매체들의 전화번호도 남겨져 있었다. 자신들의 경솔한 언행으로 혹시나 좋아하는 엑소가 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움이 읽혔다. 막말이 난무하는 요즘, 조금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맹경환 온라인뉴스부 차장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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