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한반도기 기사의 사진
서울올림픽을 3개월 앞든 1988년 6월 서울대 학생 집회에 인공기가 등장했다. 집회는 남북학생회담 추진 선포식이었다. 지금이야 판문점에서 북한 대학생을 만나겠다고 선언하면서 인공기를 들고 나온 것이 무슨 문제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는 달랐다. 경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해 인공기를 만든 학생을 붙잡았다. 이 학생은 “인공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몰라 책을 찾아 그렸다”고 말했다. 이후 90년대 중반까지 대학가 집회에 인공기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김기춘 당시 법무부 장관은 “반국가단체의 깃발이 대한민국 영토에 걸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반도기는 이런 분위기에서 등장했다. 인공기를 흔든 대학생을 모두 구속시킨 정부가 남북회담 몇 번 했다고 국가대표 선수 손에 인공기를 쥐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에 앞서 열린 남북 체육회담에서 아이디어가 나왔고, 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처음 사용됐다. 남북 단일팀이 여자 단체전에서 세계 최강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일궜을 때 시상대에 걸린 깃발이 한반도기였다. 당시 단일팀 구성 전에 나온 남북 합의서 2조에는 ‘선수단 단기는 흰색 바탕에 하늘색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넣는다’라고 적혀있었다. 3조는 ‘단가는 1920년대에 우리나라에서 부르던 아리랑으로 한다’이다. 실제로 시상식에서는 남북의 국가 대신 아리랑이 울려 퍼졌다. 이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남북이 동시에 입장할 때는 늘 한반도기가 사용됐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한반도기를 사용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많다. 얼마 전까지 서울을 핵으로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던 북한을 아무 일 없다는 듯 대하기가 쉽지 않은 까닭이다. 제 순서에 태극기와 인공기를 각자 들고 들어가면 되지 동시입장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 대학생도 많다. 지금은 통일이라고 말하면 가슴부터 벅찬 시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글=고승욱 논설위원, 삽화=이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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