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단일팀 반대’ 젊은층, 좌우 떠나 ‘공정한 룰’ 원한다 기사의 사진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충북 진천군 진천국가대표선수촌에서 남녀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단일팀을 만든다고 전력이 높아지리라 생각하지 않지만 남북이 하나의 팀을 만들어 경기하는 것 자체가 두고두고 역사의 명장면이 되고, 국민과 세계인이 감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남북단일팀 반대 사회심리학

공정 중시 ‘촛불’ 가치와 충돌
文 지지층 부정적 기류 확산
2030세대 對北 가치관 변화탓

단일팀 ‘한반도 평화’에 중요
젊은층 통일에 관심 부족 지적도


“올림픽에서 단 1분이라도 뛰고 싶은 게 모든 선수의 꿈입니다. 이제 와서 단일팀 때문에 출전을 포기해야 한다면 좌절감이 클 것 같아요.”

한 빙상종목 선수는 “올림픽에 나가고 싶어 운동을 시작했다”며 이렇게 토로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팀을 남북한 단일팀으로 구성한다는 정부의 결정에 반발이 심상치 않다. 1991년 축구와 탁구 단일팀을 응원했던 때와는 판이하다.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고, 젊은 세대의 가치관도 바뀌었다.

시민도 선수도 거센 반발

국가인권위원회는 17일 한 아이스하키 팬이 “남북 단일팀 구성이 여자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 23명의 행복추구권과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상대로 진정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A씨는 진정서에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면 국내 선수들의 출전 기회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정부는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기회를 선수들에게서 빼앗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고 한다.

실제로 체육계는 속으로 들끓고 있다. 동계종목 협회 관계자는 “정부가 단일팀 협의를 하자고 아이스하키협회에 제안한 적이 없다”며 “현장에서 밤낮 없이 4년간 땀 흘린 선수들을 본 사람이라면 단일팀 구성이 결코 쉽게 얘기할 사안이 아니라는 걸 알 것”이라고 강조했다. 선수에게 피해가 없을 것이란 정부 주장은 “올림픽을 20일 앞두고 밀어붙이면 고스란히 선수들에게 피해가 간다”고 일축했다. 다른 구기종목 관계자는 익명을 요구하며 “이러다 8월에 열리는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에도 단일팀을 만들자는 것 아닌지 선수들이 불안해한다”고 전했다.

청와대 홈페이지도 단일팀 논란으로 뜨겁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360건 이상의 관련 글이 올라왔는데 대부분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데일리안이 16일 알앤써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781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단일팀 결성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42.6%로 찬성 의견(44.1%)과 팽팽히 맞섰다.

평화보다 공평

알앤써치 설문조사에서도 30대의 단일팀 반대 비율이 50.0%로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촛불집회를 주도했던 젊은 세대는 한반도의 평화라는 거대한 명분보다 선수 개개인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장인 한모(31)씨는 “힘들게 준비해 겨우 올림픽에 출전하게 됐는데 북한이 무임승차하는 꼴 아니냐”며 “선수들은 억울해도 정치적 논리 때문에 단일팀을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못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약속을 어긴 것이라는 비난까지 나온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입학 부정이 촛불집회를 촉발했던 것과 비슷한 정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선수들이 수년간 올림픽 출전을 위해 달려온 상황에서 정부가 남북 관계라는 명분을 내세워 권위주의적 방식으로 일을 추진한 것”이라며 “더 이상 스포츠를 정치적 도구로 보지 않고 스포츠 고유의 룰을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된 상황에서 국민들은 이를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1등이 아니면 이렇게 대우해도 되는지 국민이 선수를 대리해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통일보다 손익

북한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남북한 사이의 대화가 단절된 지도 10년 가까이 된다. 그 사이 북한에선 정권 3대 세습, 핵무기 개발 등이 진행됐다. 평양에서 두 차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수십만명씩 금강산과 개성을 오가던 기억은 젊은 세대에겐 희미하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통일이 국가적 과제로 여겨져 그 연장선에서 남북 단일팀이 호응을 얻었지만 지금 젊은 세대는 북한을 같은 민족보다는 낡은 독재국가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임윤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는 남북통일이 손익계산서를 따져봤을 때 과연 우리에게 득이 될지 의문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통일을 실천하는 사람들’ 이동훈 기획국장은 “남북 단일팀은 좋다고 보지만 급하게 준비하면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며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현재와 같은 방식은 나도 반대”라고 말했다.

이형민 손재호 박구인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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