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찬희] 일하지 않는 인간, ‘놀이 인류’ 기사의 사진
여든을 바라보는 아버지는 아직 일을 한다. 평생 실컷 놀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은퇴 이후 ‘일하지 않는 시간’은 고통일 뿐이었다. 그래서 재취업을 선택했다. 얼마 되지 않지만 월급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자부심을 넘어 생존을 증명해주는 그 무엇이다. 소수의 부자를 제외하고 대다수에게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소득은 삶을 지탱하는 뼈대이다. 일자리는 가족을 부양하고 경제적 독립을 쟁취하며 각종 편리를 소유할 수 있게 만드는 수단이다. 일하는 건 미덕이고, 노는 것은 죄악이다. 그래서 우리는 일자리를 뺏어가는 로봇, 인공지능(AI)을 나쁘다고 여긴다.

‘기술 실업’ 또는 ‘일자리 파괴’는 먼 미래가 아니다. ‘현재 기술 수준으로도 일자리 중 45%를 로봇으로 대체할 수 있다’(컨설팅 업체 맥킨지의 보고서)는 얘기까지 나온다. 지난달 14일 일본 도쿄(東京)에 있는 ZMP라는 자율주행차 개발 기업에 이목이 쏠렸다. 이 회사는 완전 자율주행인 ‘레벨 5’(사람이 타지 않고도 움직이는 무인주행) 직전의 ‘레벨 4’(운전자 제어가 필요하지 않은 고도 자율주행) 단계의 자율주행차를 일반도로에서 실험했다. 도쿄도는 하계올림픽을 여는 2020년에 택시 일부를 ‘레벨 5’ 자율주행차로 대체할 예정이다. 올림픽 기간에 자율주행 셔틀버스도 운행한다. 승객이 버스 안에 있는 태블릿PC에 목적지를 입력하면 알아서 움직인다.

2014년 창업한 미국의 스타트업 퍼펙트데이는 인공우유를 연구개발 중이다. 3D프린터로 ‘설계한 염기서열’의 DNA를 효모에 주입해 카제인, 락토글로불린 등 우유단백질을 합성한다. 스포츠용품 업체 아디다스는 3D프린팅 업체 카본과 손을 잡았다. 도면과 재료를 넣으면 신발이 출력된다. 올해 10만 켤레 정도를 이 방식으로 만들 예정이다.

자율주행차는 수많은 택시·버스·트럭 기사와 대리운전기사의 일터를 앗아간다. 인공우유는 목장 주인과 인부, 3D프린터로 찍어내는 운동화는 신발공장 근로자를 위협한다. 이 때문에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나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영화 ‘터미네이터’ 같은 세상이 올 거라고 경고한다.

반대편에선 풍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를 얘기한다. 과학기술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고, 아예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킬 수도 있다고 한다. 자율주행차는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원활한 교통 환경을 보장한다. 자율주행차와 연결되는 새로운 일자리가 쏟아져나올 수 있다. 인공우유를 만드는 퍼펙트데이는 기존 낙농업 대비 에너지 소비량 65%, 온실가스 배출량 84%를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세계 곳곳에서 사라질 일자리가 불러올 엄청난 폭발력을 놓고 다양한 해법을 고민하고 있다. 일부는 로봇 도입의 규제·감독을 얘기한다. 또 일부는 정부가 일자리를 뺏어가는 로봇에 세금(로봇세)을 매겨 일자리를 잃은 인간을 재교육·재배치할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예 ‘일하지 않는 인간’을 목표로 삼자는 쪽도 있다. 이들은 ‘완전고용’이 아닌 ‘완전실업’을 정부 경제정책의 윗자리에 올려두고 모든 노동을 기술(로봇, AI 등)에 맡기자고 한다. 인간은 자유롭게 그리고 평등하게 예술과 교육에 심취하고, 사회·정치 참여에 몰두하면서 시간을 쓰자는 것이다. 일하지 않아도 국가와 정부가 누구에게나 일정 소득을 주는 ‘기본소득’ 개념도 여기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 물론 국가와 정부를 해체 수준으로 새로 짜야 하고, 경제·정치·사회 시스템을 재구성해야 한다.

혼란과 불안, 가능성이 뒤섞인 상태에서 선택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인간의 노동에 기초한 생산·소비·분배 방식은 녹슬고 있다. 일과 노동 대신 놀이를 삶의 중심에 두는 ‘놀이 인류’의 시간이 온다. 고대 그리스인처럼 노동은 노예(기계)에 맡기고 문명을 꽃피울 수 있지 않을까. 10년 뒤 우리와 우리 자녀에게 닥칠 일이다.

김찬희 경제부 차장 c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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