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나라 꼬락서니가 이래서야 기사의 사진
문재인 대통령과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독기 서린 격돌을 지켜보면서 ‘나라 꼬락서니가 한심하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우리나라 최고 권력자와 최고 권력자였던 이가 정면으로 치고받은 것부터 예삿일이 아니다. 정치권은 전면전 모드로 들어갔다. 우리 사회는 낡아빠진 이념 대립으로 당분간 몸살을 앓을 공산이 커졌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국으로 세계 이목이 집중돼 있는 상황인데,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전직 대통령과 동계올림픽을 평화적으로 치르려는 현직 대통령이 이전투구의 주역으로 등장하다니 낯이 뜨거워진다.

물은 엎질러졌다. 칼자루를 쥐고 있는 문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말만 안 했지, 오래전부터 MB에 대한 직접 수사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불법 수수, 실소유주를 둘러싸고 논란 중인 다스, 민간인 사찰, 군 사이버사의 정치공작 등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검찰 수사 상황과 국세청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로 볼 때 머지않아 MB에게 검찰 소환장이 발부될 소지가 크다. MB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설 때 전·현직 대통령 대치 국면은 정점을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 같다.

이런 불상사의 단초는 MB가 제공했다. 이명박정부 초기 검찰을 동원해 노무현 전 대통령 주변을 샅샅이 뒤져 상처를 입힌 뒤 검찰청 포토라인에 세웠고, 결국 노 전 대통령으로 하여금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MB는 ‘서재 성명’을 통해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수사가 노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며 문 대통령의 영원한 동지로 불리는 ‘노무현’을 처음으로 입에 담는 강수를 두었다.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은 맞다고 본다. 그러나 보복의 빌미를 준 건 MB다. 재임 때 노 전 대통령을 그렇게 심하게 압박할 필요가 있었나. ‘논두렁 시계’ 운운하며 망신을 줘야 했나.

작금의 MB 심정은 9년여 전, 검찰 조사를 앞둔 노 전 대통령과 유사하지 않을까 싶다. 한때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최고 권력을 누렸으나, 비난을 받으며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처지로 전락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재임 때 노 전 대통령을 옥죄었던 걸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MB는 ‘보복정치’ ‘참담함’을 말하기에 앞서 노 전 대통령 자살로 귀결된 보복수사에 대해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또 측근들이 “우리라고 (노무현정부 비리에 대해) 아는 게 없겠나”며 으름장을 놓는 것은 온당치 않다. 수사 대상에 오른 사건들에 대해 자성하고, 불법이 있다면 사죄하는 태도가 먼저다.

싸움판을 험악하게 키운 건 문 대통령이다. 최고 지도자인 문 대통령이 예상을 깨고 전직 대통령을 겨냥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초강수로 맞대응한 것은 적절치 못했다. 피바람이 연상된다면 심한 표현일까.

문 대통령과 참모들이 되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이명박정부가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한 것과 문재인정부가 MB를 압박하는 방식이 뭐가 다른가 하는 점이다. 검찰을 동원해 MB와 관련된 모든 의혹을 다시 들춰보면서 측근들을 잡아들이고, MB 부인이 국정원 특활비를 명품 구입에 썼다는 등 구저분한 혐의사실을 흘리며 상처를 입히는 건 MB 데자뷔 아닌가.

국정원 특활비를 보수정권 9년으로 한정해 수사하는 것도 문제다. 김대중·노무현정부 때도 유사한 관행이 있었다는 증언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으나 적폐청산 반대 세력의 궤변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게다가 이미 영어(囹圄)의 몸이 돼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계속 혐의를 추가하고, 재산마저 몰수할 태세다. 여권 내에서조차 부관참시(剖棺斬屍)를 이쯤에서 멈추는 게 바람직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과한 측면이 있다. ‘보수 궤멸 의도’ ‘정치보복’ ‘표적수사’라는 지적이 그치지 않는 이유들이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극복했으면 좋겠다. 지난해 노 전 대통령 추도사를 통해 ‘지못미, 노무현’을 이제 가슴에 묻고 다함께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보자, 현직 대통령으로서 이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이라고 강조했을 때 홀로서기가 가능할 것으로 여겨졌었다. 나아가 ‘보복과 갈등으로 점철된 구시대를 끝내고, 화합과 상생의 신시대를 여는 맏이로 우뚝 설 수도 있겠구나’라고 기대했었다. 하지만 요즘, ‘구시대의 막내’임을 한탄한 노 전 대통령 울타리에 여전히 갇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앞선 정권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복수’가 그리 어려운 일일까. 신시대를 활짝 열어젖히는 맏이는 언제나 볼 수 있을까.

김진홍 논설실장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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