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한장희] 코인족 된 88만원 세대의 분노 기사의 사진
2006년 그들을 처음 만났다. ‘88만원 세대’라는 책이 나오기 1년 전, 20대 후반이던 그들은 비정규직이었다. 88만원보다 많았지만 저축하기엔 빠듯한 월급이었다. 실력이 모자라지도, 노력이 부족하지도 않았지만 그들이 바라는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정규직 선배들과도 허물없이 어울렸지만 그렇다고 머물 수는 없었다. 조금 더 조건이 나은 곳이 어딜까, 시선은 항상 주변을 향했다. 몇몇은 그렇게 직장을 옮겼다. 10년 넘게 시간이 흘렀지만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마흔 줄에 접어들었지만 결혼은 엄두도 못 내고 있었고, 그나마 몇은 결혼해 아이도 생겼지만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서울 근교에 아파트 한 채 장만하겠다는 꿈도 희미해졌다. 쉼 없이 일했지만 설 곳은 갈수록 좁아졌다. 촛불혁명으로 들어선 새 정부가 ‘청년 일자리’란 이름으로 각종 대책을 쏟아냈지만 그들 몫은 아니었다.

출구가 보이지 않자 모든 게 시큰둥해졌다. ‘4차 산업혁명’ ‘블록체인’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누구누구가 비트코인으로 수십억원을 벌어 퇴사했다는 소문에는 솔깃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나만 이벤트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밀려왔다. 클릭 몇 번으로 5분 내에 대출이 승인된다는 인터넷전문은행 기사가 떠올랐다. 그렇게 몇몇은 신용대출을 받아 이른바 ‘코인족’이 됐다.

급한 마음에 버스엔 올랐지만 이내 ‘잘못 탄 거 아냐’라는 의심이 들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차트 추세가 아직 살아 있어’라며 최면을 걸었다. SNS 이곳저곳에서 접한 글들도 위안이 됐다. ‘닷컴 버블이 꺼졌지만 그때 생긴 구글, 아마존 같은 기업은 세상을 바꿔 놨다’ ‘인터넷이 정보혁명을 일으켰다면 블록체인은 금융·자산혁명으로 이어질 것이다’는 내용들이었다.

오르내림이 있었지만 어쨌든 투자금은 조금씩 부풀었다. ‘이제야 내 인생도 풀리나 보다’는 생각이 들던 그때 정부·금융 당국자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내내 팔짱만 끼고 있던 이들이 한마디 던질 때마다 시장은 요동쳤다.

한파가 몰아쳤던 지난 11일 저녁 그들을 당산역 족발집에서 만났다.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 거래소 폐쇄’라는 극약처방을 갑자기 꺼내든 바로 그날이다. 새해로 미뤄진 송년회 자리였지만 그들의 마음엔 정담을 주고받을 여유가 없어 보였다. 지금 안고 있는 게 ‘폭탄’이 아닌 ‘희망’이라고 항변했지만 눈빛은 흔들렸다. 술잔이 몇 잔 돌고 말은 격해졌다. 그들이 화난 이유는 한 달 새 반 토막 난 잔고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치 프리미엄을 만든 부나방’ ‘일확천금을 꿈꾸는 철부지’라고 손가락질 받는 게 그들의 분노를 더 깊게 만든 듯 보였다. 기대와 현실의 괴리에 10여년을 아파했던 그들이 찾은 대안이 허상임을 깨달았을 때 몰려올 절망감, 그게 누군가를 향한 분노의 화살로 변할지 생각하니 덜컥 겁이 났다.

그들도 알고 있다. 투자는 궁극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라는 걸. 하지만 내부 정보로 코인 거래를 해 짭짤한 재미를 본 직원의 탈선을 까맣게 모른 금융감독 당국 수장이 “내기를 해도 좋다”며 호기롭게 가상화폐 거품이 빠질 것이라고 했던 말, 가상화폐 대책 초안을 미리 빼내 단체카톡방에 돌려본 공무원들의 행태는 잊지 못할 것이다.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를 듣고 가슴 뛰었던 그들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불평등, 불공정한 세상이 별로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곱씹을 게 뻔하다.

가상통화 투자자들이 많이 쓰는 유행어로 ‘존버’라는 말이 있다. 존버는 ‘×나게 버티기’의 준말이다. 그들에게 “좋은 세상이 올 거니까 존버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보다 먼저 떠오른 질문은 그들이 속한 공동체가 지속가능할 수 있느냐다.

한장희 경제부장 jh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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